누구도 원치 않지만, 누구나 나쁜 기분과 함께 살아간다. 나의 나쁜 기분은 매일 다른 이유로 나를 덮친다. 인간관계, 경제 조건, 학업 성취, 병적 통증, 남과 비교, 심지어 직전의 좋은 기분에서 비롯하기도 한다. 나쁜 기분과의 동거는 예외가 아닌 일상에 가깝다.
우리 삶에서 만성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나쁜 기분은 언제나 제거 대상으로 여겨진다. 나쁜 기분의 가장 효율적인 제거 방식으로 언제나 소비할 것을 주문받는다. 나쁜 기분을 스스로 감당하지 말고, 시장에서 신상품을 사며 나쁜 기분을 제거하라는 취지에서다. 그 결과, 오직 필요 이상의 소비만이 당장의 나쁜 기분을 정리할 수 있는 대안처럼 여겨진다. 나쁜 기분에 관한 성찰과 공존은 한가로운 소리로 취급받는다.
소비가 앞장서는 현실은 오늘날 우리 삶의 이유를 끊임없는 나쁜 기분을 제거하는 데 지불할 영원한 자금을 모으는 과정으로 축소시키고 만다. 나쁜 기분이 나타났다. 소비로 잠재우자. 소비할 돈을 벌다 보니 기분이 또 나빠졌다. 추가 소비로 잠재우자.
나쁜 기분을 돈으로 해소하려 할수록 도리어 나쁜 기분의 늪에 깊이 빠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나쁜 기분을 향락으로 지우는 대신 함께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나의 나쁜 기분은 내 삶에 무엇을 선물했을까. 문득 나쁜 기분 덕에 만날 수 있었던 새로운 과거와 현재가 떠올랐다.
일상의 나쁜 기분은 지나간 날을 돌이켜보게끔 유도했다. 왜 나는 기분이 나쁜 걸까. 어떤 일을 겪었던 걸까. 언제나 빠른 세상의 속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주변을 서성이는 나쁜 기분의 근원을 찾는 과정에서 나는 종종 과거를 마주해야만 했다.
나쁜 기분 속에서 다시 읽는 나의 과거는 당시 내가 가졌던 확신과 자만을 지적했으며, 이토록 불완전한 나와 함께하는 이웃들의 고마움을 체감하게 했다. 삶의 불안한 대처로 나쁜 기분을 떨칠 수 없는 나는 언제나 타인에게 부족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텐데도, 이웃들은 나를 사랑을 담아 맞이했다. 나쁜 기분 덕에 돌이켜본 과거는 오늘에 대한 고마움으로까지 나를 이끌었다.
나아가 나쁜 기분에 관한 생각은 미래의 다짐으로 향했다. 내가 느끼는 나쁜 기분은 나만의 몫이 아니며, 타인 또한 동시에 느낄 테니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나쁜 기분은 나에게 미래에 신중할 것을 요구했다. 내가 언제나 충만하기만 했다면, 나는 나쁜 기분에서 비롯된 자신의 부족함과 타인의 마음을 고려할 필요를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마음에 머무는 나쁜 기분은 분명 지나치면 독이 되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상의 모든 나쁜 기분이 다 의료 또는 돈의 이름으로 해소될 수만은 없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크고 작은 나쁜 기분과 동행해야만 한다면, 나쁜 기분의 처치를 시장에 외주화하는 대신 나쁜 기분과의 공존이 이끌어낸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돌아보면 어떨까. 우리 일상을 울퉁불퉁하게 만드는 나쁜 기분은 종종 힘들게 하지만 동시에 인간다운 삶, 입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응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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