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 출신 소년, 형조판서가 되다

2024-12-23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차별은 참 서럽다.

이렇게 태어나지 않았다면, 세상이 조금 더 따뜻했다면 할 수 있었을 것 같은 일들이 차별에 가로막힌다. 지금이야 양반과 상민의 구분이 없고 성별에 따른 차별도 거의 없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신분계층과 남녀에 따라 이루 말할 수 없는 차별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차별에 가로막히면, 포기한다. ‘그냥 이번 생은 그러려니’하고 다음 생을 기약(?)하기도 한다. 조선시대도 그랬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차별의 벽 앞에서 절망하고 꿈을 포기했다.

그러나 그때도 꿋꿋이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다. 차별 때문에 꿈을 이루는 것이 고통스럽고 힘들지언정, 절대 포기하지 않고 꿈을 간직하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꿈을 이루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김은빈이 쓴 이 책, 《차별을 뛰어넘은 조선 영웅들》에 나오는 여섯 명의 위인이 그 주인공이다. 차별에 허덕이다 귀인을 만나고, 천운을 만나 꿈을 이뤘다. 절대 포기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위기도 기회가 되고, 무심코 지나칠 일도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1480년 무렵, 한양에 반석평이라는 소년이 살았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이 참판 집 노비가 되었다. 반석평은 이 참판 아들인 이오성이 너무나 부러웠다. 자신은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데, 공부를 싫어하는 그는 서당을 다니는 것도 모자라 집으로 글공부 선생까지 모셔 와 공부를 하니 말이다.

그래도 반석평은 운이 좋았다.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던 이오성이 《천자문》을 비롯한 이런저런 책들을 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창고로 달려가 《천자문》에 나오는 한자를 모두 익혔다. 그 뒤로는 《명심보감》, 《통감절요》까지 빌려 읽으며 공부에 깊이를 더해 나갔다.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던 이 참판은 어느 날, 다리를 주무르던 반석평이 곁눈으로 책상 위에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그가 책 내용을 물어보자 놀랍게도 내용까지 이해하고 있었다. 글공부는 왜 한 것이냐고 묻자, 반석평은 울면서 과거를 보는 것이 평생 꿈이라고 대답했다.

(p.29)

그 후에도 이 참판은 반석평을 몇 차례 불러 무슨 공부를 하는지 물었습니다. 반석평은 자기가 공부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말했습니다.

어느 여름날, 이 참판이 반석평을 불렀습니다.

“지금도 과거를 보고 싶으냐?”

“예.”

“좋다, 네 소원을 들어주마.”

“예?”

“노비 장부에서 네 이름을 지워주마. 풀려난다고 공부를 마음껏 할 순 없을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아들 없는 사람이 있다. 그 집에 양자로 들어가거라.”

그날, 이 참판은 반석평이 보는 앞에서 노비 문서를 불태웠고, 그 순간 반석평은 깊은 동굴에서 빠져나온 기분을 느꼈다. 양자로 들어간 집에서 더욱 열심히 공부한 그는 1507년, 과거에 급제하며 평생의 소원을 이루었다.

반석평은 훗날 벼슬이 형조판서에 이를 정도로 높아졌다. 그는 자신의 평생 꿈을 이뤄준 주인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가세가 기울어 벼슬도 재산도 없는 가난한 선비로 살고 있던 주인집 아들 이오성을 깍듯이 모시고 예우했다. 이를 가상히 여긴 중종은 이오성에게도 작은 벼슬자리를 주었다.

(p.35)

반석평 이야기는 한양 사람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반석평을 칭찬했습니다.

“노비 출신이 글공부를 했다니 대견하구나!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과거에 합격했다니 장하구나! 출세한 후에도 옛 은혜를 잊지 않았다니 참 아름답구나!”

이렇게 노비 출신으로 벼슬이 형조판서에 이른 반석평처럼, 가난한 평민 집안에서 작은 키로 태어났지만 ‘장군’이 되겠다는 꿈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가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워 장수가 된 정충신도 있다.

그는 훗날 숙종이 공로를 인정하여 ‘충무공’이라는 시호를 내려줄 정도로 장군으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정충신은 집안 형편이 가난하여 글을 배울 수 없었고, 열다섯 살이 되던 해 광주 관아의 하인으로 들어가 일할 정도로 장군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정충신이 여전히 관아에서 일하고 있던 열일곱 살 무렵, 그의 운명을 바꿔놓을 역사적 사건이 터졌다. 바로 임진왜란이었다. 정충신은 피란 가는 사람들 속에서도 군졸로 입대해 권율 장군 휘하에서 용감하게 싸웠다. 그는 전주에서의 승전 소식을, 선조를 호종하여 의주로 간 이항복 대감에게 전하는 역할을 맡으며 인생이 바뀌게 된다.

(p.91)

권율은 왕을 모시는 이항복 대감에게 편지를 전할 사람을 뽑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의주는 전주에서 아주 먼 평안도의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고을이었습니다. 의주에 가려면 일본군이 점령한 경기도, 황해도를 거쳐 가야 했습니다. 가다가 일본군에 잡히면 죽을 게 뻔해 편지를 전달하려는 병사가 없었던 것입니다.

군관과 군졸들이 임무를 맡지 않으려고 서로 눈치를 보는데 한 군졸이 권율 앞에 나와 무릎을 꿇었습니다.

“제가 가겠나이다.”

그는 소년 병사 정충신이었습니다.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기며 의주에 도착한 정충신은 그의 용기를 가상히 여긴 이항복의 권유로 무과 시험을 보게 되었고, 당당히 합격해 꿈에도 그리던 군관이 되었다. 어린 군졸로 전쟁터를 누빈 정충신은 인조가 즉위할 무렵에는 많은 병사를 지휘하는 장수가 되었고, 글공부를 열심히 해 여러 번 중국에 가서 외교관으로 공을 세우기도 했다.

키가 작았지만, 주눅 들지 않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글공부도 하지 못했지만,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당당히 장수의 꿈을 이룬 정충신은 오늘날 보아도 참 멋진 인물이다. 인생에서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절대 포기하지 않고, 기꺼이 몸을 던질 줄 아는 용기가 있다면 높디높은 현실의 벽도 조금씩 허물어질 것이다.

오늘날에도 현실은 차갑고, 차별도 여전하다. 다만 그 강도나 범위가 많이 약해졌을 뿐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이들의 모습은 세월을 넘어 감동을 준다. 안 될 것 같아도, 어려울 것 같아도 다시 한번 도전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이 책에 실린 여섯 명 – 반석평, 장영실, 정충신, 허준, 김금원, 김정호는 모두 자신이 가진 단점보다 장점을 살려낸 인물들이다. 좌절은 쉽고 성공은 어려운 요즘, 더 험난한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모습에서 일말의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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