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청룡의 해도 벌써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각자 최선을 다해 일 년 동안 노력해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취를 이룬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거나 거기에 더해 사랑의 결실인 아이가 태어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변화가 긍정적으로만 나올 수는 없다. 불가항력적인 원인으로 최선을 다했지만,결과가 오히려 좋지 않게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사회적 지위가 오히려 낮아지거나 경제적으로도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다.
이러한 일을 경험하고 나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심한 스트레스를 겪어서 신체적으로도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기운이 빠지고 동의보감에서도 이러한 증상을 정리해서 탈영실정증(脫營失精症)으로 정신과 질환으로 분류한다.
탈영(脫營)은 높은 지위에 있다가 떨어진 경우를, 실정(失精)은 부유했다가 갑자기 가난해진 경우를 말한다. 두 경우 모두 내가 있던 위치에서 ‘추락’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당한 정신적인 추락이기 때문에 두 경우가 증상이 비슷해서 같이 합쳐서 정리돼 있다.
구체적인 증상을 나열하면 ‘몸이 갈수록 마르고 기운이 없으며, 오싹오싹하기도 하고 수시로 놀란다. 분노로 인해 간이 상하고 과도한 생각으로 비위의 기능이 저하되며 심한 경우 호흡기가 약화할 수도 있다.’라고 기록돼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가 장기간 지속돼 만성 스트레스가 되었을 때의 증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과거 탈영(脫營)의 대표적인 예로 조선 시대 왕인 연산군을 들 수 있다. 연산군은 무오사화, 갑자사화 등 신하들을 대규모로 숙청하고 폭정을 일삼다가 중종반정을 통해 폐위됐다. 31세 한창 청년의 시기였으나 유배된 지 두 달 만에 죽었다. 아들이 사약을 마시고 죽었다고 들은 뒤 역질(전염병)에 걸려 사망한 것이다.
동의보감에서는 물론 치료법도 기록하고 있다. ‘승양순기탕(升陽順氣湯)’이라는 처방을 통해 비위 즉 소화기의 기운을 도와주고 가슴속의 열을 내려주고 기운을 순환시켜 준다. 즉 가슴에 쌓인 스트레스는 풀고 먹고 기운을 다시 보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준 선생님을 비롯한 선조들은 마음의 추락이 몸의 기운을 떨어트리고 몸을 악화시키듯 몸에 기운을 회복시켜 준다면 이를 바탕으로 마음을 다시 회복시킬 자생력을 가질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 아닐까.
탈영실정이라는 마음의 추락이 내 건강마저 해치지 않도록 우리는 높은 위치로 나아갈 때도 부가 있을 때도 마음속으로는 겸손하게 명예와 부가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언젠가는 내려갈 수 있음을 명심해서 급격한 추락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추락했더라도 거기에 매몰되지 말고 내 건강을 돌아보는 것으로 다시 일어설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 이한별 한의사·고은경희한의원 대표원장(lhb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