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차세대구축함(KDDX) 사업 수주를 놓고 갈등을 빚던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방위사업청의 중재로 해외 수출에선 협력을 약속했다. 국내 집안싸움이 미국 등 새로 열리는 함정 시장 진출에도 영향을 미쳐 ‘K-방산’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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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청은 25일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과 함정 수출사업 ‘원 팀(One Team)’ 구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상대적으로 강점이 있는 분야에 집중해 HD현대중공업이 수상함 수출사업을, 한화오션이 수중함 수출사업을 각각 주관하고 상대 기업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함정업체의 강점을 극대화면서도 자원배분과 기술공유를 통한 사업추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라며 “향후 함정 수출사업 분야의 협력을 넘어 공동개발 프로젝트 등 지속적인 상호 협력을 통한 혁신과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원 팀의 목표로는 캐나다와 폴란드의 잠수함 사업 수주가 우선 꼽힌다.
방사청이 원 팀을 위한 MOU 체결까지 나선 건 KDDX 사업을 둘러싼 양사의 해묵은 갈등이 해외 함정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2012년 한화오션이 개념설계를, 2020년 HD현대중공업이 기본설계를 각각 맡은 KDDX 사업은 다음 단계인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양사가 법적 공방까지 벌이는 등 경쟁이 과열되면서 지난해 7월 선정이라는 기존 계획이 미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갈등은 2013년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이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수주한 KDDX 개념설계도를 몰래 촬영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데서 비롯했다. 이들에 대해서는 2023년 11월 유죄 판결이 확정됐지만, 방사청이 HD현대중공업의 제재 수위를 ‘행정지도’로 의결하자 한화오션은 강하게 반발했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3월 해당 사건에 HD현대중공업의 임원이 개입된 정황이 있다며 경찰에 고발 조치했고, HD현대중공업도 한화오션을 허위 사실 적시 및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즉각 고소했다. 같은 해 11월 양사가 서로 고발을 취하했지만, 양사 간 앙금은 여전하다는 시각이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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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한국은 일본, 독일에 밀려 호주의 ‘SEA 5000 사업’에서 탈락했다. 호주가 호위함 11척을 구매한다며 우리 돈 10조원에 가까운 111억 호주달러를 책정한 사업이다. 방산업계에선 소송전까지 불사한 양사의 분쟁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미국이 해외 기업에 자국 군함 건조·수리를 막아온 법안을 개정하려는 움직임도 이번 MOU 체결에 한몫했다. 미 상원은 지난 5일(현지시간) ‘해군 준비태세 보장법’을 발의했다. 미국과 상호 방위조약을 맺은 인도·태평양 국가들이 미 해군 함정을 건조하거나 부품을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게 골자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K-방산의 함정 수출 시장에 새로운 기회의 장이 열리는 것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해양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고 다양한 국가들이 해군력을 증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우수한 함정이 세계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함정업체 간 긴밀한 소통과 협업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