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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 우리 정부에 '고정밀지도 해외 반출'을 9년만에 재신청하면서 지리정보가 한미 통상 이슈로 부상할 조짐이다. 정부는 그동안 국가안보를 이유로 반출을 불허해 왔지만, 최근 한미 통상 환경이 급변하면서 안보논리가 통할 지 미지수다. 정부는 오는 6월 말 최종 결론을 낼 방침이다.
24일 국토지리정보원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구글은 지난 18일 국토지리정보원에 1:5000 전국 고정밀지도 데이터 반출을 신청했다.
구글이 신청한 것은 전국 1:5000 수치지도와 함께 향후 업데이트될 디지털 지도 데이터를 구글 미국 본사와 해외 데이터센터로 반출할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는 것이다.
구글이 우리나라 고정밀지도나 영상지도 데이터 해외 반출을 요구한 것은 이번이 네번째다. 지난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세차례에 걸쳐 1:5000 수치지도나 영상지도 해외 반출을 요청했었다. 정부는 보안을 이유로 반출을 불허하다 2014년 법령 개정을 통해 1:2만5000 지도 반출을 허용했었다. 그러자 구글은 2016년 1:5000 수치지형도 반출을 재신청했고, 정부는 관계기관 TF 논의 끝에 대안을 제시했지만 구글이 이를 모두 수용 거부해 최종 불허처리된 바 있다.
고정밀지도와 같은 '공간정보'를 국외에 반출하려면 국토부장관 허가를 받아야 한다.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항의 경우, 국외반출협의체에서 최종 결정한다.
정보원은 관련 부서와 관계기관 의견조회를 거쳐 이달 중 보안심사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위원회에서 국외반출협의체 심의가 결정되면 신청일부터 60일 이내인 4월 말까지 구글에 심의 결과를 통보해야 한다. 만약 추가 논의가 필요할 경우, 기한을 60일 연장할 수 있어 늦어도 6월 말께 최종 결론이 날 전망이다.
관건은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요동치는 한미 통상 관계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지리정보나 망사용료, 플랫폼 수수료 등을 '비관세장벽'으로 보고 관세 압박 수단으로 활용할 전망이다. 정부 입장이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안이 중대한만큼 최종 결론까지 추가 연장 논의를 거칠 가능성이 크다.
정보기술(IT) 및 공간정보 업계는 국내 안보와 산업에 미치는 파급력이 큰 만큼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구글은 1:5000 고정밀 지도를 요청하면서 국내 보안시설 위치 데이터를 해외 구글 데이터센터로 전송한 뒤 보안 처리를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국가공간정보 기본법' 등에 따라 구글이 국내에 서버를 둬야 정밀지도 국외 반출을 허용할 수 있다는 정부 입장과 배치된다.
구글이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확보하면 국내 지도 기반 서비스도 즉각적인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1:5000 축척 지도는 아파트 단지와 골목길 등까지 정밀하게 표현한다. 구글이 해당 지도 데이터를 확보하면, 티맵과 네이버 수준의 정밀한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향후 자율주행이나 디지털 트윈 등 국내 첨단 산업까지 구글이 장악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중소기업 위주인 국내 공간정보 산업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성급하게 지도 반출 여부를 결정하기 보다 국내 산업 영향과 보완 대책 등을 면밀하게 파악한 후 반출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구글이 국내 투자는 외면한 채 미국 정부를 등에 업고 고정밀 지도 데이터만 반출하려는 시도라는 불만도 나온다.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 변상근 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