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을 꾸준히 그리면 관찰력을 기를 수 있어요. 이렇게 길러진 관찰력은 환자를 파악하고 수술할 때 많은 도움이 돼요.”
일러스트 작가로도 활동 중인 이지호 서울아산병원 교수(구강악안면외과)가 최근 ‘얼굴의 인문학’(세종서적)을 펴냈다. 얼굴뼈를 미(美)에 대한 인간의 감정과 욕망, 그리고 정체성을 드러내는 매개체로 바라본 참신한 시도다.
이 교수는 20년 이상 수많은 환자를 만나며 쌓아온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감정을 전달하는 얼굴과 그 근간인 얼굴뼈를 인문학적으로 해석했다. 특히 직접 그린 일러스트, 웹툰 등과 함께 역사와 영화 속에 담긴 얼굴뼈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다.
이 교수는 “해부학이라는 말에 지레 겁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문적인 얼굴뼈 해부학 책은 이미 많이 나와 있으니 저는 좀 더 다른 얘기를 하고자 했다”며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의 그림 사랑은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생 시절 만화를 따라 그리거나 흉내 내면서 독학으로 실력을 쌓았다. 현재는 개인 블로그를 통해 임상뿐 아니라 일상, 건물, 풍경 속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그림은 치과의사 이 교수의 삶과도 연결된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는 ‘관찰’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꾸준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 관찰력을 기르는 훈련이 된다. 사물, 사람을 관찰할 때 특징을 잘 잡아야 좋은 그림이 나온다”라며 “이렇게 길러진 관찰력은 환자를 파악하고, 질병을 접하고, 수술실에서 환자를 들여다볼 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반대로 치과의사의 경험이 그림 작가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구강악안면외과 진료 특성상 길게는 수년 동안 한 환자를 반복해서 만나게 되면서 진료 과정에 치료 이야기뿐 아니라 삶에 대한 이야기가 필연적으로 섞이게 된다. 이 교수는 “진료 과정 이면의 이야기를 알게 모르게 접하게 된다”며 “사람의 이야기는 작가에게 좋은 영감을 준다”고 했다.
그림은 그의 휴식처가 되기도 한다. 이 교수는 “그림을 그리는 그 시간 자체가 휴식이 된다. 혼자 조용하게 일러스트 작업을 하면서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기분 전환을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