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헬스케어' 시장 올인···美 향하는 이유는?

2025-10-20

삼성전자가 신수종 사업 '헬스케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년간 인수와 투자를 이어온 삼성전자는 최근 암 조기진단 기업 그레일에 1560억원을 투자하며 정밀의료 생태계 확장에 나섰다. 다만 헬스케어 전략의 무게추가 특히 미국 시장으로 기울고 있다. 이는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의 규모와 더불어 국내 의료법 규제가 기술·사업모델 실현을 저해하는 현실이 작용한 결과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지난 17일 삼성물산과 함께 그레일에 1560억원을 투자해 지분 4%를 확보했다. 그레일은 한 번의 혈액 검사로 췌장암, 난소암, 간암 등 50여 종의 암을 조기에 발견하는 '갤러리' 검사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헬스케어 기업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투자로 갤러리 검사를 활용, 표준화된 선별 검사가 없는 암을 조기진단할 수 있는 데이터를 삼성헬스 플랫폼과 연계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의 헬스케어 진출은 2010년대 초부터 이어져온 미래 신성장 포트폴리오의 핵심이다. 업계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와 스마트폰으로 삼성을 키웠다면 이재용 회장의 시대는 헬스케어로 정의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이러한 평가를 현실화하듯 최근 들어 삼성전자가 헬스케어 투자를 본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자회사 삼성메디슨에서 프랑스 AI 의료기기 스타트업 소니오를 1265억원에 인수한 데 이어 같은 해 7월 미국 DNA 분석 장비 기업 엘리먼트바이오사이언스에 투자했다. 올해 7월에는 디지털헬스케어 기업 '젤스'를 인수했다.

연이은 투자로 삼성은 예방·예측(그레일·엘리먼트)-진단(소니오)-관리(젤스)로 이어지는 데이터 기반 정밀의료 생태계를 완성하게 됐다. 엘리먼트와 그레일이 유전자·혈액 데이터로 질병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고, 소니오가 AI를 기반으로 진단 정확도를 높이며, 젤스가 병원과 환자 간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연동해 치료 이후의 생활관리까지 확장하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비전인 '커넥티드 케어 서비스' 확장에 한층 빠르게 가까워졌다는 분석이다.

다만 여기서 눈길을 끄는 점은 삼성전자의 헬스케어 사업 무게 중심이 국내보다 미국 시장에 뚜렷하게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엘리먼트바이오사이언스·젤스·그레일 모두 미국 기업이며, 프랑스 스타트업 소니오 역시 북미 병원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다.

이 같은 행보는 미국이 글로벌 헬스케어 산업의 중심이자 가장 개방적인 시장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 헬스케어 유통 시장 규모(1485조원)에서 북미가 43%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는 통계도 나온다. 이러한 데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헬스케어 산업 민영화와 규제 완화를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민간 중심 헬스테크 생태계를 활성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 지난 7월 삼성전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개최한 '건강 기술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Making Health Technology Great Again)' 행사에 유일한 한국 기업으로 참석했다. 이와 관련 미국 헬스케어 기술 생태계에 삼성전자가 공식 파트너로 인식됐다는 평가가 오가고 있다.

동시에 한국의 규제 역시 삼성전자가 해외, 특히 미국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데 한 몫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 의료법 제34조에 따라 원격진료가 금지되어 있다. ICT를 활용한 원격의료는 의료인과 의료인 간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2010년대 초부터 원격진료를 의료보험 체계에 편입해 관련 규제가 자유로운 편이다.

삼성전자는 이런 제도 차이를 일찍이 인식하고 미국 중심의 사업 구조를 설계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삼성헬스 브랜드를 선보였을 당시 한국에서는 개인 맞춤형 건강 콘텐츠 제공 수준에 머물렀지만, 미국에서는 AI 스피커를 통해 병원 상담이 가능한 실질적 의료 서비스 단계까지 진입하는 등 차별적으로 공략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같은 기조는 'AI 헬스코치'에서도 이어진다. 삼성전자는 베타버전을 연내 북미에서 발표할 계획으로, 국내 출시 시기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해당 시스템은 삼성헬스 앱에 챗봇 형태로 탑재돼 의사의 지시를 가정해 지침을 사용자가 이행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을 탑재했다.

박헌수 MX사업부 디지털 헬스팀장은 "미국에서 AI 헬스코치 베타 버전을 먼저 선보여 피드백을 받는 이유는 저항이 없어 디지털 기술을 (의료 분야에)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이라며 "한국의 경우 규제에 어긋나지 않도록 서비스를 모듈화하는 형태로 추후에 접근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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