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2025년을 '인공지능(AI) 3대 강국 도약의 원년'으로 선언하며 2조5000억원 이상을 투입하고 있다. AI 인프라 확보에 1조4600억원을 투입해 고성능 GPU 1만~1만3000장을 확보하고, 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에 2조5000억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산업 AI 확산에 4800억원을 추가 투자하는 등 역대 최대 규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5년도 전체 예산 중 약 8800억원이 AI 및 디지털 혁신 분야에 배정돼 있다. AI는 더 이상 연구의 영역이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가 되었다.
그러나 30여년간 소프트웨어(SW) 산업 현장을 지켜본 입장에서, 이 막대한 투자가 진정한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확신한다. 바로 공공SW사업에서 AI 도입에 대한 적정 대가 산정체계의 확립이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부가 매년 약 2000여개 공공기관의 정보화사업 추진계획을 조사·분석해 공개하는 SW수요예보조사에 따르면, 2025년 공공 AI 사업은 3480억원 규모에 160건으로, 2023년 2713억 원 117건과 비교하면 불과 2년 만에 금액은 28.3%, 건수는 36.8% 급증했다.
전체 SW구축사업 4조 7844억원 중 AI 기능을 포함해 발주하는 사업 비중은 금액 기준 7.3%, 건수 기준으로는 전체 7981건 중 2.0%를 차지하고 있다. 공공·산업 인프라의 전면적인 AI화, 초거대 AI의 행정 도입 등 정부 계획에 따라 공공 AI 사업은 빠르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 성장세가 반가운 한편,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다수의 공공 AI 프로젝트가 여전히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상의 전통적 SI사업과 동일한 구조로 발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AI 서비스 구축의 핵심은 데이터 수집·정제, 모델 설계·학습·튜닝, 성능 검증 등 고도의 전문성과 반복적 테스트를 요구하는 고도의 영역이다. 그러나 현행 대가체계는 이러한 AI 특화 업무를 인건비 중심의 원가계산서에 단순 포함시키는 구조다. AI 서비스 대가는 GPU 사용료나 클라우드 컴퓨팅 비용, 데이터 라이선스, 연구개발(R&D) 전문 인건비 등의 비용 항목이 보다 세분화돼 반영돼야 한다. 기업들은 AI 전문 프로젝트를 20년 전 SI 수준의 단가로 수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선진국들이 AI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별도의 대가 기준을 마련한 반면, 우리만 여전히 '노동 투입형 단가' 체계에 머물러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조달청(GSA)이 2024년 발주한 AI 모델 개발 계약에서는 GPU·클라우드 비용이 전체 예산의 35%를 차지했고, 유럽연합(EU)은 AI Act와 함께 공공부문 AI 조달 가이드라인을 통해 데이터 구축비용을 최소 25% 이상 반영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일본은 2025년 AI촉진법을 근거로 데이터 라이선스 및 학습비용을 총사업비의 30% 이상 반영하도록 규정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AI 대가 체계는 저가 수주 경쟁을 유발하고, 이는 필연적으로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충분한 데이터 확보와 모델 학습 시간, 전문 인력 투입이 보장돼야 AI 서비스의 정확도와 신뢰성이 담보될 수 있다. AI는 단순한 노무가 아니라 지식과 창의성의 결합체이며, 그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받을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무엇보다 지금이 중요한 시점이다. 2025년 하반기부터 국가AI컴퓨팅센터를 비롯한 대형 AI 프로젝트가 본격 발주되고, 2026년 1월에는 AI 기본법이 시행된다. 지금 적정 대가체계를 확립하지 않으면 향후 2~3년간 발주 혼란과 분쟁이 지속될 것이며, 그 피해는 결국 공공 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다행히 해법은 이미 마련돼 있다.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는 지난 8월 현장 기업들의 목소리를 모아 현실성 있는 'AI 서비스 도입 사업비 산정 방식'을 포함한 대가산정가이드를 공표했다. 서비스 총이용료, 커스터마이징 작업비용, 구축·개발비용을 명확히 구분하고, 커스터마이징 작업을 기본형·데이터형·모델형으로 세분화해 요구사항 분석, 설계, 데이터 구축, 모델 구현 및 학습, 검증 및 안정화 등 주요 작업 항목을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전문 인력이 실제 투입하는 서비스 대가를 투입공수에 따라 합리적으로 산정하는 방식이다. 앞으로도 AI사업 대가와 관련된 비용구조와 산정기준에 대해 지속적인 연구와 관계자 의견 수렴 등을 통해 가이드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해 나갈 예정이다.
그러나 이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일 뿐, 현장에서는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공기관의 예산 수립 단계부터 이전 예산 규모에 근거해서 설계되고 있기 때문이다. AI 사업임에도 과거 SI 사업의 예산을 답습하는 관성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합리적인 대가 기준이 있어도, 예산 편성 단계에서 이를 반영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산업계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 일부 기업들이 단기 수주를 위해 저가 입찰에 나서는 것은 결국 업계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일이다. 합리적인 대가 기준이 마련되더라도, 기업들이 무분별한 저가 경쟁을 지속한다면 건전한 생태계는 만들어질 수 없다. 우리 모두가 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 산업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때다.
AI 3대 강국은 예산의 크기가 아니라 생태계의 건강성으로 완성된다. 그 생태계의 첫걸음은 기술에 대한 정당한 대가 인정이다. 기술은 정당한 평가를 받을 때 진화하고, 산업은 공정한 보상 위에서 성장한다.
정부의 제도 개선, 발주기관의 합리적 예산 편성, 그리고 기업들의 자정 노력이 조화를 이룰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AI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협회는 산업계를 대표해 해법을 제시했고, 동시에 회원사들과 함께 건전한 경쟁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앞장설 것이다. 이제 함께 실행할 때다.
조준희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 회장 jhjoh@sw.or.kr
〈필자〉 2001년 유라클을 창업해 24년 동안 대표이사직을 수행하고 있는 AI·SW 기업가다. 2021년부터 법정단체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 제18·19·20대 회장을 연임하며 AI·SW산업 발전과 생태계 개선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산업AX생태계분과 분과위원장, 피지컬AI 글로벌 얼라이언스 의장,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위원 등 산업 발전을 위해 활발한 정책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