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박태건 시인-송현섭 '착한 마녀의 일기'

2025-01-15

동심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뭘까? 별, 꽃, 구름, 천진함…. 그런데 이것들은 오래전에 잃어버린 것들이 아닌가? 어렸을 적 ‘잠든 척’하며 들었던 부모님의 대화를 기억한다. 오줌이 마려워도 참았다. 뭔가 어른들 만의 비밀을 알아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음 날부터 ‘알아도 모르는 척’ 해야 했다. 송현섭의 동시집 <착한 마녀의 일기>는 어린이를 순수하고 무구한 존재로만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통쾌한 똥침을 놓는다. 송현섭은 “나는 시옷 자의 풀밭에 누워 / 기름처럼 둥둥 뜬 흰 구름을 보며 / 생각하고, 고민하고, 의심하고, 추리했네. // 젠장, 나는 분명 삥 뜯기고 있는 거야.”(「착한 마녀의 일기」)처럼 세상의 변두리에서 들려옴직한 말로 동시를 쓴다. 파격적이고 발칙한 상상력이다.

송현섭 시인은 199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됐다. 오랜 시간 ‘천사의 시’를 찾았으나. 결국 그가 찾은 건 ‘마녀같은’ 동시다. '착한 마녀'라니, '착한 정치인'이라는 말처럼 아이러니하다. 그는 이 시집으로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하했다. 동시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송시인은 어린이를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시선에 반대한다. “동심이나 순수함이란 관찰의 대상이 아니에요. 아이들은 너무 바빠서 순수할 겨를도 없어요.”

동심 천사주의와 교훈주의는 만들어진 아동문학의 안과 밖이다. 동심 천사주의는 현실의 피로와 중압감을 아이의 순수성에 기대 치유하고 구원받으려는 어른의 낭만적 충동이다. 그래서 동시에는 달님, 별빛, 이슬, 무지개 등의 상투어가 자주 등장한다. 아름다운 단어나 교훈적인 결론으로 끝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존재이며, 구체적인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사회적 존재다. 마치 ‘우리 마을에 새로운 괴물이 하나 더 추가된 거지’ 같은 말은 어지러운 시국을 예견하는 것 같다.

감정도 거래되는 요즘 시대에는 송현섭의 동시를 읽어야 한다. 복잡하고 난해하게 사는 현대인에게 시인의 엉뚱한 따뜻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처단’, ‘검열’, ‘통제’처럼 어리석고 무서운 단어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거리의 언어는 타락하고 태극기는 오염되고 있다. 어린이에게 무얼 보고 성장하라는 말인가?. 기존의 동시가 세속적인 세계에서 아이들의 귀를 막는 것이었다면 송현섭의 동시는 뻔뻔하고 추악하게 사는 ‘괴물’ 같은 어른들의 세상에서 부대끼는 ‘작은 인간’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솔직해서 차라리 가슴을 뛰게 하는 아이들의 생각을 읽으며 정작 유치한 것은 어른들임을 생각한다.

새해다. 산에 올라 일출 사진을 공유하고, 한해의 계획을 세우고… 생각해보니 작년에도 그랬잖아! 점집도 바빠지는 시기. 신문은 무속에 빠져 자신과 나라를 위기에 몰아넣은 이들을 비판하는 한편 '오늘의 운세'를 게재한다. 환상을 믿는 것은 어른들이 더 하다. 송현섭의 동시집 <착한 마녀의 일기>를 나라를 혼란에 빠트려 구치소에 수감될 이들에게 읽히고 싶다. 너희들의 못된 심보는 다 들통났으니 순순히 투항하라.

박태건 시인은

1995 전북일보 신춘문예와 시와반시 신인상에 당선됐다. 시집 『이름을 몰랐으면 했다』로 불꽃문학상을 수상했다. 『나바위성당 팔각창문 아래서』 , 『익산문화예술의 정신』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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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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