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유통(不相流通 서르ᄉᆞᄆᆞᆺ디〮아니〮ᄒᆞᆯᄊᆡ)

2024-10-10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2024년 10월 9일은 훈민정음 창제 578돌이 되는 날이다. 창제 당시의 훈민정음(訓民正音)해례본 서문을 보자.

國之語音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故愚民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易習, 便於日用耳。

언해본 원문인 世솅〮宗조ᇰ御ᅌᅥᆼ〮製졩〮訓훈〮民민正져ᇰ〮音ᅙᅳᆷ을보자.

나랏〮말〯ᄊᆞ미〮 中듀ᇰ國귁〮에〮달아 文문字ᄍᆞᆼ〮와〮로〮서르ᄉᆞᄆᆞᆺ디〮아니〮ᄒᆞᆯᄊ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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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당시의 훈민정음 창제를 둘러싼 몇 가지 창제 환경을 보자.

ㆍ“원리를 보면,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글이 있게 되니, 옛날 사람이 소리로 인하여 글자를 만들어 만물(萬物)의 정(情)을 통하여서, 삼재(三才)의 도리를 기재하여 뒷세상에서 변경할 수 없게 한 까닭이다.”라고 했다.

ㆍ“현상에서 보면, 사방의 풍토가 구별되매 성기(聲氣) 곧 음성과 기운도 또한 따라 다르게 된다. 대개 외국의 말은 그 소리는 있어도 그 글자는 없으므로, 중국의 글자를 빌려서 그 일용(日用)에 통하게 하니, 이것이 둥근 장부가 네모진 구멍에 들어가 서로 어긋남과 같은데, 어찌 능히 통하여 막힘이 없겠는가?” 하였다.

- 우리 동방의 예악 문물(禮樂文物)이 중국에 견주 되었으나 다만 사투리와 보통말 만이 같지 않으므로, 글을 배우는 사람은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려워 걱정이 많았다.

- 옥사(獄事, 역적이나 살인범 등의 중대한 범죄를 다스리는 일) 하는 사람은 그 복잡한 사정을 통하기 어려워 괴로워하였다.

- “옛날에 신라의 설총(薛聰)이 처음으로 이두(吏讀)를 만들어 관과 민간에서 지금까지 이를 행하고 있지마는, 그러나 모두 글자를 빌려서 쓰기 때문에 껄끄럽거나 꺼리고 시원찮아 뿌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사이에서도 그 만분의 일도 통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대안으로 계해년(1443)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正音) 28자를 처음으로 만들어 쓰임과 풀이를 간략하게 들어 보이고 이름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하였다.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古篆, 서체의 하나인 옛 전자체)을 본뜨고, 소리는 칠조(七調, 우리 음악의 일곱 가지 조)에 합하여 삼극(三極) 천지인(天地人)의 뜻과 이기(二氣) 곧 음양의 정밀하고 묘함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어서, 28자로써 전환하여 다함이 없이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고 자세하면서도 통달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로써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가 있으며,”

- 이로써 송사(訟事)를 자세히 듣고 판단하면 그 실정을 알아낼 수가 있게 된다.

- 자운(字韻, 글자의 운)은 맑음과 흐림을 능히 분별할 수가 있고, 노래는 가락이 능히 어울릴 수가 있으므로 써서 갖추지 않을 수가 없으며 어디를 가더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서, 비록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이든지, 닭울음소리나 개 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표현해 쓸 수가 있게 되었다.

훈민정음에 대해서는 ‘어린 백성’은 ‘어리석은 백성’이 아니라 우민愚民의 번역에서 증명된다. 실록에서 백성을 민(民)으로 표현한다. 민은 글말이고 백성(百姓)은 입말인 셈이다. 백성(百姓)은 백 가지 곧 여러 성(姓)을 가진 민(民)으로 그런 민(民) 속에서도 개성을 갖춘 독립체 민이라는 것이다. 성(姓)이란 ‘개인의 탄생에 따른 가족 역사를 가진 개체’의 뜻이 있다. 따라서 당시 나라에서도 훈민정음을 반포한 때부터 민(民)을 통치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대화(민의 입말 ‘백성’)의 상대로 보아 민의(民意)의 정치를 할 수 있고 또 해야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훈민정음 서문을 글자로만 읽지 말고 뜻으로 읽어야 할 까닭이 이런 데 있다.

또한 세종이 ‘새로’라 이름 지은 것은 사실은 ‘신제(新制)’에 따른 반발을 무마하려는 뜻이지 실은 창제(創制)인 것이다. 모든 발명이 그렇듯 그 발상은 기존의 비슷한 것에서 찾는 게 모든 발명의 일반 현상이다. 비행기조차 바람에 나는 하늘의 새를 보고 꿈을 꾼 결과이니까.

동국정운 : 우리의 백성들이 속된 소리를 익혀서 익숙하게 된 지가 오래되었으므로, 갑자기 고칠 수 없으니, 억지로 가르치지 말고 배우는 자로 하여금 의사에 따라 하게 하라. (세종 30/ 10/ 17일)

《동국정운(東國正韻)》을 여러 도(道)와 성균관(均館館)ㆍ사부학당(四部學堂, 조선시대 중앙의 4부에 설치된 관립교육기관)에 내려주었는데 《동국정운》은 명(明)의 《홍무정운(洪武正韻)》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한자음을 바로 잡기 위하여 펴낸 것으로 글자마다 우리 소리를 먼저 붙이고 한자를 표기하였다.

바로 ‘민본정신’으로 그것도 스스로 알고 행하게 하는 자조, 자생, 자행의 과정을 거치게 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보이는 우리말 해석에서는 한문과는 조금 다른 뜻이 있다. ‘國之語音(국지어음) 곧 나랏말씀’이라 했는데 이는 한문에서는 어(語)와 음(音)이라고 했지만, 우리말에는 말씀이라 했다. 그러니까 원칙으로는 ‘말과 소리’인 것이다. 왜 ‘훈민정자(訓民正字)’나 ‘훈민정문(訓民正文)’이 아니었나? 또 ‘조선문’이나 ‘조선어’가 아니었나 하는 점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과 다르다’는 중국이라는 나라는 중원 혹은 중국의 강남에 있는 나라에 대한 통칭이다. 당시 중국은 명(明)이지 중국은 아니다. 그러므로 중원에서 쓰는 나라말을 번역해 쓰는데 중국이나 우리말에 사투리가 많아 다르다는 것이냐, 아니면 무엇이 다르냐 하는 데 대해 분명히 두 나라의 말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지적한다. 말소리는 물론 문자로도 같지 않아 통하는 바가 없다. 우리말은 교착어(문법적 기능을 말뿌리-어근과 접사와의 결합 연속으로 나타내는 언어)이고 중국의 고립어(말마다 고립되어 다른 말의 영향을 받지 않는 말)이다.

‘고우민(故愚民)’, 이런 전차로 ‘어린 백성이’에서는 한문으로는 ‘어리석다’는 우(愚)지만 서문에는 ‘어린’ 백성이라고 했다. 이 ‘어린’을 ‘어리석은’은 ‘얼이 석은’ 곧 ‘얼이 썩은’의 기원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어린’ 곧 ‘어리다’ 또는 ‘여린’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리다’는 ‘어리다’, ‘어리니’, ‘어리어’, ‘어리고’... 등 ‘무엇인가가 외부로부터 안으로 깃들거나 배어드는’ 형상이다. ‘꾸민이’가 ‘차림새를 모양새 나게 매만지고 손질하여 용모가 돋보이는 사람’이라 하고 ‘먹은이’가 ‘무얼 먹은 사람’ 처럼에서와 같이 ‘어리다’는 행위가 있는 상태다.

‘어린 이(사람, 백성)’는 ‘아직 얼이 깃들어 있지만 밖으로 발휘되지 못한 순진한 상태의 어린 사람’이라 해야 할 것이다. 비록 후대의 일이지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라는 호칭을 썼을 때 어리석은 아이들이라는 뜻이 있었다면 과연 쓸 수 있었을까?(1920년 《개벽》 3호 혹은 1941년 《청춘》 창간호에 실렸다고도 함.)

우민(愚民)이라 했지만 ‘어린’이라고 한 것을 ‘어리석은’으로 번역한 사람들은 아직도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뜻 이전의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는 우(愚)의 뜻은 알지만 ‘어린’의 뜻은 옛글이니 모르겠다고 물러난 사람들일 것이다.

‘불상유통(不相流通)’은 중국 글자를 우리말로 규칙에 맞게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어는 근본적으로 글자가 생기고 읽는 법이 따라 생긴 말이다. 발음에 규칙이 거의 없다. 우리말은 말이 말을 만들어 내는 구조가 내재하여 있는 셈이다. 이 두 언어의 차이를 인지하고 세종은 우리말을 음성학 법칙에 맞게 그 표현법을 창제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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