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분해장(葬)이 끝난 것 같네요. 보러 가시죠.”
17일 경기 하남시 하남테크노밸리 네오메이션 테스트센터. 세탁기 소음과 비슷한 소리를 내던 수분해 장치 ‘NP40’이 1시간 만에 작동을 종료했다. 이내 증기 빠지는 소리와 함께 빨래 삶은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더니 지름 1m짜리 원형 뚜껑이 열렸다. 겉모습도 통돌이 세탁기와 유사한 장치 본체에서 꺼낸 내용물은 앙상한 뼈 조각들이었다. 뼈는 손으로 집으면 쉽게 부스러질 정도로 물러져 있었다. 1시간 전 살점과 핏기가 가득했던 10㎏짜리 돼지갈비가 뼈만 남긴 채 말끔히 분해된 것이다.
이번 시연에는 돼지갈비가 쓰였지만 실제 서비스 대상은 죽은 반려동물이다. 박양세 네오메이션 대표는 “연내 경기 동두천시에 시범 센터를 열고 유기동물 수분해장 서비스를 개시할 계획”이라며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한 데 이어 반려동물 장례 업체 ‘21그램’과도 업무협약을 맺고 서비스 협력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급증하는 반면 사후 매장이나 화장 등 장례를 치를 전용 시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수분해장을 대안으로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수분해장은 알칼리 가수분해, 줄여서 수분해라는 화학반응으로 사체를 처리하는 장례법이다. 물(H2O)은 수소 이온(H⁺)과 수산화 이온(OH⁻)의 결합이다. 두 이온의 양이 서로 같으면 순수한 물이 되지만 H⁺가 더 많으면 산성, OH⁻가 더 많으면 알칼리 용액이 된다. 알칼리 용액은 알칼리 가수분해 반응으로 단백질과 지방을 분해시킬 수 있다. 수분해장은 물에 수산화칼륨(KOH)을 녹여 농도 5%의 알칼리 용액으로 만든 후 사체 중 무기물로 이뤄진 뼈를 제외하고 단백질·지방으로 이뤄진 살과 털·피 등을 분해해 물에 녹이는 과정이다. 이는 세탁을 할 때 알칼리 세제가 단백질·지방 오염 물질을 녹여내는 원리와 비슷하다. 이날 수분해장 시연 현장에서 ‘빨래 삶은 냄새’가 났던 것도 기분 탓이 아니었다. 박 대표는 “수분해장은 화장과 달리 탄소와 유해가스 배출이 없다”며 “1회 전기요금도 사체 40㎏ 기준 4090원으로 화장에 필요한 액화석유가스(LPG) 비용인 9만 원보다 크게 저렴하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수분해장이 아직 제대로 상용화되지 못한 것은 낮은 효율성 때문이다. 미국의 선도 업체 바이오리스폰스솔루션스(BRS)의 장치는 1회 수분해에 10시간이 걸려 하루 1~2회밖에 장례를 치를 수 없다. 네오메이션은 장치의 고압 성능과 내구성을 동시에 갖추는 특허 기술로 소요 시간을 1시간으로 단축해 이 같은 한계를 국내 실정에 맞게 극복했다.
수분해장은 미국 BRS가 2006년 광우병에 걸린 소를 처리하기 위한 사체 처리 서비스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광우병을 일으키는 프리온 단백질은 불로도 파괴되지 않아 당시 수분해 수요가 급증했다. 최근에는 화장보다 90% 이상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반려동물뿐 아니라 인간 시신 대상 수분해장이 도입되는 추세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고(故) 데즈먼드 투투 남아프리카공화국 성공회 대주교는 2022년 수분해장으로 장례를 치렀으며 미국 30여 개 주에서도 이미 합법화됐다. 6월 영국 법률위원회는 의회에 수분해장 합법화를 제안했고 현지 장례 업체 코옵 퓨너럴케어는 장비 업체 레조메이션과 손잡고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수분해장뿐만 아니라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인 장례를 구현하는 신기술 ‘데스테크’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간 시신을 퇴비로 만들거나 유해를 다이아몬드 반지 같은 기념품으로 가공하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인간 퇴비화는 시신을 미생물이 든 캡슐에 넣어 5~7주에 걸쳐 흙으로 분해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흙은 자연에 뿌려지거나 화분에 담아 고인을 기리는 나무를 키우는 데 쓰인다. 미국 기업 리컴포즈는 “12개 이상의 주에서 합법화했다”며 “매장이나 화장과 비교해 1명당 탄소 배출을 1톤 줄이고 에너지는 87% 절감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리턴홈·어스퓨너럴 등도 현지 시장에서 경쟁 중이며 영국에서도 합법화가 검토되고 있다.
스웨덴 기업 프로메사는 시신을 극저온에서 동결 건조시켜 재로 만드는 빙장(氷葬)을 선보인 바 있다. 유해나 디옥시리보핵산(DNA) 일부를 우주로 보내 밤하늘에서 고인을 기리게 하는 우주장도 있다. 미국 기업 셀레스티스는 지난해 조지 워싱턴, 존 F 케네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은 물론 산악인 엄홍길 대장의 DNA를 우주로 실어올리며 이름을 알렸다. 일본 스페이스NTK는 반려동물은 50만 엔(470만 원), 인간은 1000만 엔(9400만 원) 이상을 받고 유골을 우주에 쏘아 올린다.
분해 후 남은 유해를 가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도 있다. 미국 기업 에테르네바는 유해에서 추출한 탄소를 고온·고압으로 압축해 다이아몬드로 만든다. 가격은 다이아몬드 양에 따라 최소 3499달러(486만 원)에서 많으면 수만 달러(수천만 원)에 달한다. ‘파팅스톤’은 비슷하게 유해를 압축해 돌멩이로 만들어주는 서비스로 올해 3월 기준 고객 1만 가구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시장조사 업체 마켓리서치인텔렉트에 따르면 전 세계 장례 서비스 시장은 지난해 1200억 달러(170조 원)에서 2033년 1600억 달러(220조 원)를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