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한다. 지난달 29일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주의 한 호텔에서 룸서비스로 시킨 햄버거가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좌진을 통해 햄버거를 시킨 시간은 이날 오후 4시30분. 그는 이미 오후 2시39분 한·미 정상회담을 겸해 늦은 점심을 먹었다. 새우, 전복, 관자 해산물 샐러드와 미국산 소고기로 만든 갈비찜이 메뉴였다. 회의는 오후 4시6분에 끝났다. 이어 그는 오후 6시30분 7개국 정상 초청 특별만찬에 참석했다. 만찬 메뉴는 영월 오골계, 트러플을 곁들인 만두, 경주 남산 송이버섯, 구룡포 광어, 지리산 캐비아 등이었다.
그의 햄버거 주문은 디테일했다. 햄버거에 소스는 바르지 말고, 아메리카 치즈를 올려달라고 주문했다. 또 케첩을 많이 달라고 했다. 트러플, 캐비아 같은 산해진미를 먹는 와중에 그는 왜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햄버거를 시켰을까? 그것도 ‘아메리카 치즈와 케첩 듬뿍’이라는 특이한 주문을 덧붙여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햄버거는 음식이 아니라 정치적 도구다. 정치 경력이 전무한 억만장자 기업가였던 그는 2015년 갑자기 45대 미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전통적인 선거 전략과 달리 기존 정치권을 비판하는 포퓰리즘 전략을 사용했다. 그때 도구의 하나가 햄버거였다. 그는 와인, 스테이크 같은 고급 음식을 즐기는 정치 엘리트와 달리 자신은 미국 대중 음식인 햄버거를 즐긴다고 강조했다. “케첩을 듬뿍 친다”고도 말했다.
고도의 노림수였다. 햄버거는 1950년대 미국의 고도 경제성장과 발맞춰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화적 코드로 발돋움했다. 그는 미국 문화의 DNA가 된 햄버거에 자신의 이미지를 우회적으로 투사한 것이다. 햄버거는 그에게 ‘격식 없는 친근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했다. 케첩을 듬뿍 친다는 디테일도 그런 장치다. 그 결과, 트럼프는 2016년 공화당 경선에서 정치 명문가 출신인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를 이겼고 본선에선 상원의원에 국무장관까지 역임했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승리했다.
당선 뒤에도 햄버거 쇼는 계속됐다. 2019년 미 정부가 셧다운됐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 초청된 그해 미 대학미식축구 선수권전 우승팀 선수들에게 햄버거를 내놓았다. 정치 전문가들은 “샹들리에가 번쩍이는 백악관 만찬장의 은쟁반 위에 올려진 햄버거는 ‘예산 감시’라는 의회 고유의 기능을 희화화하려는 정치적 의도”라고 비판했다. 우연이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경주 한 호텔에서 햄버거를 시킨 날은 미 정부가 셧다운된 지 29일째 되던 날이었다.
햄버거는 ‘우리 시대의 로마’로 불리는 미국의 대통령과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햄버거를 정치적으로 활용해 스펙터클한 자신만의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이런 이미지에 지지자들은 “트럼프는 유기농 루콜라만 먹는 ‘해안가 엘리트’(민주당 지지자를 칭하는 말)들과 다르다”고 환호해왔다. 그의 스펙터클한 햄버거 쇼가 지난달 29일 우리나라 경주에서도 펼쳐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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