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길

2024-10-24

현금자 수필가

양산을 함께 쓴 두 사람 뒷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연인인지 부부인지 알 수 없는 터. 모하비 사막의 6월은 한국 8월 열기보다 따가웠다. 콜로라도강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말발굽 협곡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주자창에서 오가는 길이가 2.4㎞다. 건강음료인 물도 백 팩에 두 병이나 넣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길이지만 선글라스와 긴소매 옷, 장갑을 끼고 양산까지 폈다.

봄은 짧고 여름은 길어지고 있다. 5월에 봄나들이 간다는 말도 무색하게 하는 기후 변화다. 여름에 쓰던 양산이 일찍 현관에 나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친정어머니는 나들이나 장에 갈 때 나를 벗 삼았다. 양산 쓴 어머니 다리 옆에 매미처럼 꼭 붙어 다녔다. 너무 가까이 가면 걸음걸이가 불편했다. 약간 거리를 두면 “ 양산 아래로 들어오라.” 하며 나의 윗옷을 잡아당겼다.

어머니와 키 차이로 양산 기울기에 따라 내가 햇빛을 받게 되면 가던 길을 멈추고 위치를 바꾸곤 했다. 해가 있는 쪽으로 양산을 기울이고 나는 그 반대편에서 걸으면 어머니의 몸으로도 햇빛을 가리게 되었다.

다시 걷다가 떨어질라치면 “ 어머니 옷을 잡아라. 가까이 오렴” 하며 나의 어깨를 감쌌다. 양산 아래로 불어오는 바람이 볼에 닿는 느낌도 좋아 콧노래도 나오곤 했었다. 분홍색으로 수 놓아진 일본제 양산이었다. 구하기 힘들고 값이 나가는 양산을 어떻게 어디서 샀는지도 궁금했었다. 박봉으로 살림을 꾸렸기에, 목표를 세우고 꾸역꾸역 한두 푼씩 모았으리라.

시내로 나갈 때는 버스를 많이 이용한다. 봄에 양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으나, 나는 한사코 양산과 한 몸이 된다. 현관 장에는 여러 개의 양산이 있다. 내가 산 비에도 젖지 않을 양산, 지인이 선물해 준 이중 천으로 된 보랏빛 양산, 일본에 사는 k 언니가 선물한 양산은 무려 세 개나 된다.

언니는 일 년에 한두 번 고향 방문을 했다. 앙증맞은 검은 색 수양산을 들고 나를 만났다. 조그마한 양산에 둘이서 쓰고 걸으며 옛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릴 적 어머니와 수양산 썼던 추억담을 이야기했더니, 헤어질 때 쓰고 있던 양산을 냉큼 건네주었다. 쓰던 양산을 준 것이 마음에 거슬렸는지, 이듬해 올 때는 새로 산 검정 수양산을 선물해 주었다. 다시 해를 넘기고 왔을 때는 비가 와도 문제가 없는 파스텔 색조 양산을 사 오셨다.

언니는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났으니, 고향 방문도 뜸해지고 있다. 오늘은 어떤 양산을 가지고 나갈까. 현관에서 잠시 망설인다. 양산을 쓰고 나가는 날에는 으레 친정어머니와 k 언니를 불러내곤 한다. 양산 속에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착각, 아니 진정 함께 가고 있을게다.

우연히 보게 된 영상에 눈이 멈췄다. 사막에 두 사람이 걷다가, 이제 좀 쉬어 가고 싶은데 태양은 작열하고 그늘이 없었다. 한 사람은 서고 한 사람은 앉아있다. 서 있는 사람의 긴 그림자가 사람 나무가 되어 준다. 걸을 때는 키가 큰 사람 옆에 딱 붙어 걸어간다. 목마른 사막길에 두 사람 뒷모습이 멀어져가고 있었다.

나에게 그늘이 돼 주었던 이들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지금껏 누군가 그늘이 되어 주었던 일은 얼마나 있었고, 요즘 내게 그늘이 되어 주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누구인가를 묻는 중이다.

동행이란 숲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같은 곳을, 같은 마음으로 가는 걸음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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