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대

2024-10-23

둔치 길을 걷는다. 오늘따라 참새 지저귀는 소리가 유난히 거슬린다. 좋을 땐 노랫소리로 들리지만 싫을 땐 성가신 소음일 뿐이다. 요즘은 참새구이가 없어졌지만 옛적 포장마차에서 참새구이를 파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참새잡이 하는 엽사도 있었던 것 같다. 공기총에 납 탄을 넣고 쏴서 잡는 풍경을 본 기억이 난다. 먹을 것이 귀해서인지 움직이는 것은 다 잡아 먹던 슬프고 암울한 우리의 과거 모습을 돌이켜본다. 시골에서 토끼사냥이나 까투리사냥은 다반사였다. 노래가사에도 ‘까투리 사냥을 나간다’는 구절이 있지 않은가? 참새는 집에서 기르기도 잡기도 쉽지 않는데 그 많은 포장마차에서 팔고 있어 궁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메추리를 참새로 둔갑시켜 참새구이로 팔고 있었던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속이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요즘은 원산지나 비슷하게 생긴 사촌쯤 되는 고기나 물고기를 진짜로 둔갑시켜 파는 행위가 그런 류가 아닐까 싶다.

어릴 적에 마당의 참새를 잡으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바가지에 작은 막대기로 괘고 끈을 매달아 세워 놓고 쌀알 뿌려 놓고 멀리서 망보며 기다렸다. 참새가 들어가면 줄을 확 잡아 당겨 가두는 단순한 방법인데 만화에서나 본 것처럼 참새가 워낙 민첩해서 잘 잡히지는 않는다. 그런 추억이 떠올라 지금 둔치 길 옆의 나뭇가지에 백 마리도 넘어 보이는 참새 떼가 시끄럽게 짹짹거리고 있다. 그물로 확 덮치면 한 소쿠리 물고기 잡듯 한 상자 가득 잡을 것만 같다. 불쌍한 참새를 잡을 생각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모든 게 인간이 만들어 놓은 잣대일 뿐이라 생각한다.

한 때 뉴트리아도 농가에서 고수익을 위해 사육하기도 했지만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으로 몰리고 까마귀가 과일피해를 입혀 지자체에서 둘 다 엽사들에게 보조금을 줘가면서 퇴치했으며, 어느 섬 지역에서는 흑염소가 너무 번식해서 생태계 균형을 위해 포획하는 상황을 보기도 했다. 최근 뉴스에서 어느 섬마을에 생태계 복원을 위해 40년 사슴을 방목한 결과 개체수가 너무 늘어 민가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지금도 농가에 각종 야생 동물의 습격을 받아 피해를 보는 농민들이 속출해 대책을 세우기도 한다. 우리 하천의 물고기도 마찬가지다. 외래종인 배스와 블루길이 점령하고 토종어류인 붕어도 씨가 마른다고 한다. 대책은 무조건 잡아내어 동물사료로 쓰거나 맛있게 요리해서 먹는 것이다. 참새 역시 추수철 나락을 다 먹어치워서 참새 떼를 쫓기 위해 소리나게 하거나 허수아비를 세우던 모습이 너무나 낯이 익다. 그런 참새가 아침잠을 깨우는 자명종 역할을 할 때도 있고 ‘참새와 허수아비’의 노래제목처럼 낭만적인 풍경을 연상할 수도 있지만 유익과 해악의 기준은 우리가 정하는 때에 따라 달라진다.

예전에 닭을 기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손수 기른 닭이라 차마 먹을 수 없어 계란은 먹어도 한 동안 닭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맥주와 함께 즐기기도 한다. 그런 맥락이라면 참새를 먹어본 적은 없지만 통구이 해서 소주 한 잔 하는 상상이 죄 지을 상황인가? 우리가 먹고 있는 모든 생명체는 처음부터 식용의 유무가 정해지지 않았다. 우리 스스로가 묵시적으로 정한 기준일 뿐...

유익한 동물이었다가 해를 끼치는 동물로 전락하는 순간, 보호 받다가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동물들의 운명이 안쓰럽기만 하다. 보호 종일 땐 식용이 안 되고 해로운 동물로 판정될 땐 식용으로 묵인되는 슬픈 동물들의 운명이다.

TV에 동물의 왕국이란 프로를 즐겨 본다. 자연은 생존경쟁의 법칙을 따르며 먹이사슬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강자든 약자든 가족을 양육하기 위해 필사적인 경쟁을 하고 그 과정에서 생사의 불편한 장면들을 보며 누가 더 옳고 그르다 할 것 없이 자연의 섭리를 따르고 있다. 우리 인간이 만들어 놓은 규칙으로 이로운 동물이 되었다가 해로운 동물로 전락하여 도태되는 슬픈 운명을 보게 된다. 둔치 길을 걸으며 시끄러운 참새소리에 복잡한 생각을 하며 옛날 먹을 게 귀했던 시대에 수확의 계절에 해로운 동물의 참새잡이를 떠올리며 요즘처럼 먹을 게 흔한 살기 좋은 시대를 감사하며 동물들도 다음 생엔 인간으로 태어나라며 위로해준다.

자연의 말

필사적인 먹이사냥

쫓는 호랑이 편들어야 하나

달아나는 영양 편을 드나

강자든 약자든 그 새끼는

약자 입장에 서면

달아나 살길 바라고

강자 입장에선

새끼 위해 성공하길 바라고

살아가는 방식 각기 달라

먹이 사냥을 위해

강자가 약자 취하는 동물세계

쫓고 쫓기며 균형을 이룬다

밥만 먹고 살 수 없는 인간사회

채우지 못해 아쉬워한다

하나 얻고 나면

다른 것이 또 손 내민다

저마다 이유 있는 투쟁하며

힘 있고 가진 자의 정의

불만족한 불균형의 균형으로

우리 삶을 성찰하게 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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