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디지털 공간에서 그려지는 도시의 미래

2025-05-14

“진짜란 두뇌가 해석하는 전자신호에 불과한 거야.”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한 이 말은,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디지털 혁명의 도래를 상징한다. 이제 메타버스는 더 이상 영화 속 상상이 아니다. 현실과 가상이 융합된 디지털 공간은 우리의 일상과 사회 구조를 바꾸고, 공간과 시간의 개념마저 재편하고 있다. 그렇다면 연결된 도시는 어떻게 바뀔까? 우리는 그 변화 속에서 어떤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

메타버스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확장현실(XR) 등 첨단 기술로 가상과 현실이 융합된 디지털 공간을 구현하는 개념이다. 최근에는 생성형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트윈이 결합되면서 도시계획, 산업, 경제 등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생성형 AI는 환경과 콘텐츠를 자동 생성해 사용자 경험을 높이고, 디지털 트윈은 현실 도시를 정밀 재현해 운영 효율을 높인다. 블록체인 기반 가상자산도 경제적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확산 속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기업들은 성장성과 현실적 제약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 중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기업들은 메타버스 전략을 재조정하고 있다. 초기에는 높은 비용과 낮은 기기 보급률로 확산이 제한됐고, 메타는 적자 누적 끝에 AI 중심으로 전환했다. 디즈니와 마이크로소프트(MS)도 관련 부서를 축소했다. 사용자 이탈과 활용성 한계가 드러나자, 기업들은 AI와 혼합현실(MR) 등 현실과 연계된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따라 메타버스는 완전한 가상공간에서 벗어나, AI·MR 기반의 실용형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메타버스 시장은 여전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Statista에 따르면, 2025년 시장 규모는 약 1036억달러, 2030년에는 약 5078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며, 연평균 37.4%의 성장이 예상된다. 완전한 가상세계보다 현실과 연결된 기술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산업전반에서 메타버스를 핵심 도구로 도입하려는 흐름도 지속되고 있다. 특히 도시계획과 공간관리 분야에서는 이를 활용한 혁신적 접근이 활발히 논의 중이다.

해외에서는 메타버스와 AI 기반 디지털 트윈을 활용한 도시운영과 인프라 혁신이 활발하다. IBM은 교통, 에너지, 환경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 신호 최적화, 에너지 효율 개선, 오염 모니터링을 수행하고, 이를 정책 결정에 활용한다. 토요타의 'Woven City'는 자율주행, 로봇, 에너지 기술을 가상환경에서 실험하는 미래형 스마트시티다. 스위스 연방공대의 'Urban Twin'은 도시 인프라와 기후변화 모델을 3D로 시뮬레이션해 정책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국내도 기술기반 혁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서울시는 'S-Map'으로 도시를 3D로 구현하고, 공공 데이터와 연계해 교통·재난 대응에 활용 중이다. 산림청은 AI, 로봇 자동화, 디지털 트윈을 통해 산사태 예방 데이터를 수집하고, 메타버스로 가상 숲 체험과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의 확산만으로는 메타버스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지속적 발전을 위해 넘어야 할 과제들이 있다. 첫째, AI와 디지털 트윈이 현실을 정밀하게 재현하면서 개인정보 침해와 데이터 남용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선 사용자가 직접 정보를 관리할 수 있는 '개인 데이터 금고'를 도입하고, 민감 정보에는 '차등 접근 제어'를 적용해야 한다. 둘째, 기술 발전이 디지털 소외를 심화시킬 수 있다. AI 기반 맞춤형 교육, 음성안내 시스템, 인터넷 요금 지원 등 실질적 대책으로 공공서비스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셋째, 가상자산 시장의 허위거래와 가격조작을 방지해야 한다. AI 기반 분석과 블록체인을 통해 투명성을 확보하고, 기업의 재무·기술 로드맵 공개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제도개선만으로는 부족하다. 메타의 '호라이즌 월드'와 린든랩의 '세컨드 라이프'는 콘텐츠 부족과 낮은 사용자율로 실패했지만, '로블록스'와 '포트나이트'는 게임과 소셜 기능을 결합해 창작경제를 선도하며 성공했다. 메타버스의 성패는 몰입감 있는 콘텐츠와 현실과의 연계성에 달려 있다.

미래의 메타버스는 AI, 디지털 트윈, 6G, 블록체인과 결합해 더욱 정교한 가상공간으로 진화한다. 생성형 AI는 환경과 아바타를 자동으로 만들고, 디지털 트윈은 도시를 그대로 시뮬레이션한다. 도시설계는 도면이 아닌, 시민이 먼저 걸어보는 가상공간에서 시작된다. 놀이터의 위치, 벤치의 방향, 자율주행차 도로까지. 시민은 이 도시를 미리 체험하며 자신의 일상을 상상하고 의견을 더한다. “처음인데도 익숙한 느낌이에요.” 가상도시를 둘러본 한 시민의 말이다.

메타버스는 사회적 포용과 환경 보호에도 기여하고 있다. 의료분야에서는 VR 기반 디지털 치료제 'VIVID Brain'이 뇌졸중 환자의 시야 민감도 개선에 활용되고 있다. 원격근무와 가상협업은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 미국 액센츄어는 이를 업무에 도입해 성과를 냈고, 코넬대 연구팀은 온실가스가 최대 54%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메타버스는 산업을 넘어 지속가능한 사회 구축에도 기여하고 있다.

“충분히 발전된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미래학자 아서 C. 클라크의 말처럼, 메타버스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며 상상 속 미래를 현실로 바꾸고 있다. 도시와 교육, 의료, 환경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설계할 기회가 열린다.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가능성을 선택하느냐다. 더 나은 미래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만드는 것이다. 이제는 상상을 현실로 바꿀 때다.

김형렬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필자〉김형렬 청장은 국토·도시·건설 분야의 주요 정책을 이끌어온 정통 관료다. 연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술고시로 공직에 입문해 국토교통부 대변인, 국토정책관, 수자원국장, 건설정책국장 등을 거쳐 새만금개발청 차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을 맡고 있다. 대한경제·헤럴드경제 등에 칼럼을 연재 중이며,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으로 미래국토포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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