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이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혁신을 위한 소프트웨어(SW)를 갖춰야 합니다. 리더에 의존하지 않는 SW, 즉 기업 문화를 만드는 것이야 말로 인공지능(AI) 시대에 기업이 지속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구현모 전 KT 대표는 1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AI 시대를 맞아 국내 기업들의 대응 전략과 관련해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할 기업의 힘은 회사 안의 리더십, 조직 문화, 역량에서 나오는 ‘뾰족함(sharpness)’에서 시작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뾰족함은 남들과 다른 차별화된 전략으로 기업을 이끌 수 있는 역량과 비전을 뜻한다.
구 전 대표는 1987년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CEO) 자리까지 올라 총 35년을 한 직장에서 근무했다. CEO로 재직하면서 KT가 AI 기업으로 변신하는 데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출간한 경영 지침서 ‘더 샤프니스’에는 35년간 경험한 기업 환경 변화 대응 노하우를 담았다.
그가 재직하는 기간 중 공기업이던 KT는 민영화를 통해 민간기업이 됐고 유선전화를 중심으로 한 독점 통신사업자에서 모바일과 인터넷, 미디어 사업, 데이터센터와 AI 등을 주력 사업으로 하는 디지털 플랫폼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구 전 대표는 “평생 한 회사를 다녔지만 회사가 영위하는 사업과 기업 문화는 마치 3~4개의 다른 회사를 다닌 것처럼 바뀌었다”고 회고했다.
이런 과정에서 늘 그는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이 될 것인가’를 고민해왔다고 한다. 구 전 대표는 “제품, 서비스, 구성원, 경영 전략 등 기업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은 남과 다른 날카로운 면이 있어야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며 “이런 의미에서 뾰족함을 책에서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리더가 바뀌어도 계속해서 좋은 성과를 내는 기업은 이 뾰족함이 기업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며 “그래야 리더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문화가 지배하는 1등 기업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타 대기업들도 끊임없이 주력 사업을 바꿔온 기업들만 발전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진단하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시대 흐름 속에서 조직이 리더 한 사람만 쳐다봐서는 대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스스로 뾰족한 아이디어를 내고 성과를 이뤄내 발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짚었다. 또 이러한 뾰족함은 스타트업부터 중소기업·대기업까지 모두 적용된다고 부연했다. 구 전 대표는 “관리하는 조직의 규모가 작을 때는 뜻만 맞으면 굉장히 쉽게 풀어갈 수 있는 문제도 규모가 커질수록 회사의 비전·가치·목표가 불투명해지면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기업 규모에 따라 조직을 관리하기 위해 갖춰야 할 요소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구 전 대표는 저성장 시대를 맞아 기업들이 비용 절감이 아닌 구조 혁신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이익 목표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비용을 줄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바람직한 접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과거 형광등 소등, 에어콘 온도 올리기, 사내 복지 축소 등 비용을 절감하려는 주먹구구식 시도가 많았다”며 “기업 본연의 활동을 해칠 수 있는 비용 절감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는 시각보다는 비용도 구조가 있다는 인식을 통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보통신기술(ICT)과 디지털전환(DX) 전문가인 구 전 대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행보와 AI 기술 패권 경쟁 상황에 대해 “국가적인 위기”라고 진단했다. 그는 “AI가 모든 산업의 생산요소로 쓰일 텐데 파운데이션 모델과 에이전트 서비스 등에서 후발 주자인 우리나라가 모든 산업 분야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의미”라며 “다만 중국의 딥시크 개발 성공 사례를 보면서 국내 AI 벤처·스타트업에서 가능성과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구 전 대표는 퇴임 후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겸임교수로 임용돼 ‘AI 시대의 신사업 기획과 실행’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그는 “AI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가를 늘 고민하고 있다”며 “대학뿐 아니라 산업 현장에서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