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못 읽나?”…무분별 외래어가 불편한 세상

2024-10-08

심각한 언어 오염 ‘한글날이 부끄럽다’

대구 최대 번화가 동성로 일대

‘forest breeze’, ‘JBUTTON’,

‘umbro’ … 뜻 모를 간판 난무

식사하러 갔더니 옷가게 ‘황당’

무슨 음식인지 모를 메뉴판에

주문까지 10분 넘게 걸리기도

“이 간판, 나만 못읽는 건가요”

우리 민족의 언어인 한글이 만들어진 지 578년이 지났지만 대구시내 곳곳에는 여전히 외국어 간판이 점점 늘어나 한글날을 무색케 하고 있다. 간판뿐 아니라 메뉴판, 안내문까지 외래어, 합성어 등이 남용되고 있고 시민들도 당연한 듯 갈수록 무관심해지고 있다.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 일대는 마치 외국 거리를 연상케 했다. 가게마다 ‘forest breeze’, ‘JBUTTON’, ‘umbro’ 등 뜻도 알 수 없는 외래어 간판으로 점령돼 있고 오가는 시민들은 당연하다는 듯 관심조차 없었다.

직장인 이세운(34·북구 복현동)씨는 “간판만 보고 음식점인가 해 들어가니 옷가게였던 적이 있다”며 “한국인들은 우리말이 가장 편한데 굳이 상호명을 외국어로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가게 메뉴판에서도 손님들이 ‘외국어 시험’을 봐야 한다. 메뉴판에 외국어만 표기되거나 한글 발음을 그대로 옮긴 경우가 많아 많은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는다.

중구 한 음식점을 찾은 박모(66)씨는 “외국어를 잘 모르는 우리 나이대는 음식 주문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서글프다”며 “저번에는 ‘판자넬라 디 뽈뽀’가 뭔가 해서 직원에게 물어보니 그냥 문어 샐러드였다”고 토로했다.

서모(25)씨는 “영어는 그나마 읽겠지만 불어, 이탈리아어 등을 한글 발음으로 옮겨놓은 메뉴들은 도저히 무슨 음식인지 알 수 없다”며 “결국 친구와 10분 동안 검색해 메뉴이름을 번역한 뒤 음식을 주문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기관들이 올바른 우리말 사용을 위한 대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행사나 캠페인 등이 한글날 전후에만 집중돼 ‘반짝 정책’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은 4일부터 10일까지를 ‘한글주간’으로 정하고 10대 실천과제를 통해 일상 속 언어문화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외국어, 외래어로 표기돼 의미도 제대로 알기 어려운 아파트 이름을 우리말로 바꾸는 ‘우리집 뭐라고 부를까’ 공모전을 9일부터 다음 달 13일까지 연다.

또 햄버거 프랜차이즈 ‘버거킹’과 협업해 우리말 메뉴판 행사도 연다. 9일까지 전국의 버거킹 매장 400여곳에서 외국어 메뉴 이름들을 우리말로 바꾼 전자메뉴판을 사용한다.

온라인에서는 네이버 등과 함께 ‘숨은 우리말, 다듬은 우리말’을 소개하고 국민이 ‘간직하고 싶은 우리말’을 제안하는 행사를 마련한다.

시민 조모씨는 “한글날에만 우리말을 사랑하자는게 반짝구호로 생각돼 딱히 와닿지 않는다”며 “긴 글 대신 짧은 영상 등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시민들의 문해력이 점점 떨어져 안타깝다. 우리말을 꾸준히 사용하고 언어문화를 개선할 국가 차원의 근본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유빈기자 kyb@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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