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만이 찍을 수 있는 하드 보일드 액션, 그가 장르다

2024-09-20

오동진의 전지적 시네마 시점

약 30년전인 1997년 쯤, 당시만 해도 별 볼일 없는 청년이었던 음악감독 조영욱은 불현듯 ‘난장 영화제’라는 것을 기획했고 예술의전당, 그것도 토월극장에서 상영을 하게 됐다. 그때만 해도 예술의전당에서 그런 상영회가 가능했다. 요즘처럼 디지털이 아니라 필름 상영을 하던 시절이었다. 필름 수급, 곧 영화사에서 예술의전당까지의 필름 배달이 현안으로 떠올랐다. 조영욱은 발 빠르고 똘똘한 아르바이트를 구하자고 했고 단박에 류승완이란 이름이 나왔다. 당시 류승완은 20대 초반이었고 뭐든지 해야 할 때였다. 조실부모했고, 가난했으며, ‘변질헤드’라는 단편을 연출했지만 이곳저곳에서의 연출부 일만으로는 생계가 힘든 때였다. 단 몇 푼이라도 아쉬울 때였다. 마침 그는 오토바이를 몰 줄 알았다. 류승완은 바로 합류했다.

십자인대 끊겨 이젠 고난도 발차기 못해

그런데 사단이 났다. 영화 한편은 보통 필름 4캔 분량이다. ‘워킹&토킹(Walking&Talking, 1996)’이었는지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Welcome to the Dollhouse, 1997)’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류승완은 세 번째 캔을 빼놓고 배달을 했고, 그걸 체크하지 못한 어리숙한 젊은이들은 그대로 영화를 상영했으며, 이상하게 영화가 짧다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모 평론가는 영화적 생략과 점프 컷의 의미를 설명해 가며 매우 예술적인 작품이라는 식의 GV(관객과의 대화)를 했는데, 영화제를 만든 치기 어린 젊은이들은 이 사실을 쉬쉬하며 숨기기에 바빴다. 류승완 혼자 엄청 당황해 했음은 물론이다. 자기 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고해, 뒤늦은 진술은 해당 영화 두 편을 수입했던 영화사 올리브 커뮤니케이션 윤명오 이사의 빈소에서 이루어졌다. 윤씨는 지난해 8월 타계했고 빈소에는 류승완·조영욱·박찬욱 등이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모두들 외롭고 엄숙했던 빈소에서 서로 그러지 말라고 옆구리를 쿡쿡 찔렀지만, 결국 이 때의 얘기를 하면서 파안대소하고 말았다.

가난했던 아이 류승완의 꿈은 한국의 이소룡이 되는 것이었다. 한국의 액션 키드가 되는 것. 그가 자신의 영화 ‘짝패’(2006)에서 스스로 540도 발차기를 선보인 것을 보면 처음엔 연출보다 액션 연기에 관심이 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배우로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적이 많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에서 짜장면 배달부로 나오는데 현관에 들어서서 철가방을 턱 내려놓고 짜장면과 단무지를 척척척 꺼내는데 그 액션 각이 경력 10년 차 정도되는 ‘철가방’ 그 자체였다. 영화 ‘짝패’에서는 아예 주연급으로 영화 전체에서 활약한다. 그는 이 영화 촬영 도중 부상을 당했고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국내 스턴트 액션의 1인자이자 역시 ‘짝패’에서 주연을 맡았던 정두홍에게서 위로의 전화를 받는다. 정두홍은 “십자인대만 괜찮으면 돼. 걱정마”라고 했지만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십자인대가 끊어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류승완은 이제 540도 발차기를 하지 못한다.

유럽의 평론가들에게 한국의 감독들의 어떤 점이 주목을 끌게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한국 영화에 정통한 몇몇은 한국 영화감독들에게서는 ‘고유한 독특함(uniqueness)’이 가장 돋보인다고 말했다. 박찬욱의 ‘올드 보이’는 박찬욱만 찍을 수 있고 봉준호의 ‘괴물’은 봉준호만이 찍을 수 있는데 액션 장르에 있어 류승완의 영화는 류승완만이 찍을 수 있는 것이라는 얘기이다. 실제로 액션의 서스펜스 측면에서 ‘모가디슈’의 탈출 장면 같은 스트리트 몹 씬(mob scene)을 찍을 수 있는 감독은 한국에 류승완 밖에 없다. ‘베를린’같은 첩보 스릴러를 구상하고, 각본을 쓰며, 연출을 할 수 있는 감독 역시 류승완 밖에 없다. 류승완은 어느덧 류승완식의 전쟁역사액션, 첩보 스릴러, 수사 액션 영화들을 만들어 왔다. 류승완표라는 라벨이 생겼고 스스로 장르가 된 감독이 됐다. 이제 그의 영화는 류승완 장르로 분류된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장편영화 데뷔를 했던 27살이래 지난 24년간 그는 연출과 제작, 출연까지 합하여 40편이 넘는 영화에 관여해 왔다. 류승완은 1973년생이다. 그도 50을 넘겼다.

최근 개봉한 ‘베테랑2’는 개봉 6일 만에 400만 명을 모았다. 주말을 넘기는 개봉 열흘 째에는 600만 관객을 모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식이라면 천만 각이다. 물론 극장들의 탐욕, 과도한 스크린 몰아주기 덕도 톡톡이 보고 있지만 극장 측으로서는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될 영화에 몰아 주고 돈을 벌겠다는 심산이다. 그들이 봤을 때 ‘베테랑2’는 충분히 그럴 만한 영화이다. 류승완·황정민·정해인의 이름값이 정상급이고 무엇보다 영화의 콘텐트가 받쳐준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베테랑2’가 이전의 1편(2015)에 비해 못 하다느니 하는 지적도 많아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의 그런 비판의 각도가 조금 어긋나 보이는 것은 이 영화가 섬세하게 품질론을 내세울, 그런 류의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업영화는 늘 재미와 의미의 비중을 적절한 비율로 섞되 재미를 의미보다 앞에 세운다. 이 영화의 빌런(악당)이 지닌 서사가 없다는 지적들을 많이 하지만, 그래서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들을 하지만 만약 이 자경단같은 연쇄살인마의 앞선 이야기, 그가 왜 살인마가 됐는지를 구구이 설명하려면 이 영화는 OTT 드라마로 갔어야 했을 것이다. 2시간 안쪽의 영화에서 감독은 늘 이야기의 어디를 강조할 것인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류 감독, 24년간 40편 넘는 영화에 관여

류승완은 이번 ‘베테랑2’에서 형사 서도철(황정민)의 가족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룬다. 서도철의 아들은 학교에서 학원폭력의 피해를 당하며 자살 충동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서도철 본인 역시 연쇄살인마(이지만 한국의 사법제도가 솜방망이 처벌을 한 흉악범 강간범 등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일종의 응징자)를 쫓으면서 범인의 행동에 조금이나마 동조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들을 때리는 애들을 죽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서도철은 선을 넘지 않는다. 아들을 때리는 아이들도 원칙적으로 처리한다. 매맞는 아들을 이용하는 것은 오히려 범인이다. 그래서 범인은 범인이고 형사는 형사이다. 이것이야 말로 ‘베테랑2’가 보여주는 단순명료한 주제이다.

류승완이 이번 영화에서 스스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라면 먹는 장면이다. 찢어지고 부르트고 시퍼렇게 멍이든 얼굴로 서도철은 라면을 끓인다. 그는 자신처럼 얼굴이 깨지고 찢어진 아들(변홍준)을 식탁으로 부른다. “여 와서 한 젓갈 해. 아 한 젓갈만 해. 얼릉!” 자고 있던 아내(진경)가 깨고 라면을 한 입 뺏어 먹으며 “어우 짜. 애한테 이렇게 짠 걸 멕이고 아이 참”이라고 투덜거린다. 류승완이 ‘베테랑2’로 복구하고 싶었던 것은 이 시대의 가족주의이며 평범한 가정의 평화로운 모습이다. 그것이 바로 1편과 2편의 차이이며 어떤 사람들은 1에 비해 2는 ‘한 방’이 없다고 말하지만 류승완은 그걸 어쩌면 의도적으로 없앤 것으로 보인다. 격정의 한 방보다는 여운과 여유의 아우라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류승완도 나이를 먹었고 애들이 많이 컸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더 눅눅해졌다.

황정민과 류승완은 영화를 통해 숱한 교감을 이루어 낸다. 서로가 서로의 얼터 에고이다. ‘베테랑1, 2’ ‘부당 거래’, 류승완이 제작한 ‘인질’ 등을 통해서이다. 언뜻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아 보여도 황정민이 그간 보여 준 많은 액션 연기, 곧 ‘크로스’와 ‘길복순’ ‘교섭’, 특히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에서의 액션연기가 류승완과의 그간의 작업이 없었다면 밑바탕이 튼튼했을까. 황정민-류승완 조는 이제 흥행보증수표가 됐다.

감독 류승완과 배우 황정민 콤비의 결정적인 장면은 ‘베테랑2’의 후반부이다. 서도철은 절뚝거리며 터널 벽을 기대고 앉는다. 막 범인과의 격렬했던 일합을 끝낸 상황이다. 그의 입에서는 절로 이런 말이 나온다. “아 힘들어, 아후 힘들어 죽겄네.” 그러면 차츰 동료 형사들이 슬금슬금 옆으로 와 앉는다. 팀장(오달수)과 팀원들(장윤주·오대환·김시후)도 어구어구 힘들어 하는 표정들이다. 황정민의 그 지친 표정은 류승완이 지난 시절 영화를 만들며 여기까지 온 지친 마음을 대변한다. 감독과 배우는 그런 식으로 교감한다. 류승완의 하드 보일드 액션의 원더랜드는, 그렇게, 계속될 것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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