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인터뷰] “대전환기 농업…미래산업 발돋움에 필요한 건 자본·기술”

2025-01-23

“이제 인터뷰도 인공지능(AI)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 말이 기록으로 다 남으니까요. 부처님 손바닥이 아니라 AI 손바닥에 사는 것 같아요. 농업도 그래요. 네덜란드 ‘농업AI 경진대회’에서 어느 해 우승자가 그랬다잖아요. ‘책에서 배운 게 틀릴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고요. 농업이 변화에 적응하려면 기술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해요.”

작은 농담으로 시작한 인터뷰가 불쑥 농업의 미래로 향했다. 장태평 대통령 소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장은 소신을 뭉텅뭉텅 내놓는 데 거침이 없었다. 그는 우리 농업이 격동기에 놓였다면서도 미래산업으로 발돋움할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했다. 올해를 이를 현실화할 시발점으로 삼자는 장 위원장. 최근 농어업위에서 그를 만나 우리 농업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물었다.

- 취임(2022년 12월5일) 후 2년이 지났다. 소회가 궁금하다.

▶ 농업 ‘대전환기’에 취임했다. 우선 인구 변화가 심각하다. 농민이 고령화하고 농촌에 사람이 줄어든다. 고령농은 생산성이 낮고 영농규모도 작다. 우리 농업은 생산성과 규모를 키워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둘째는 기후변화다. 재배 적지가 달라진다. 경북의 사과농가가 북상해야 할 판인데 그러려면 농지 소유·이용 문제가 부상한다. 셋째는 앞선 두가지 변화의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기술 변화다. 이런 대전환기에 맞는 정책 틀을 확립하려는 노력을 2년간 했다. 올해도 이를 지속할 것이다.

- 지난해 농업경영체 기준을 높이자고 제안했다. 어떤 의미가 있나.

▶ 지금 우리 농업은 보조금 의존적이다. 농지를 1000㎡(303평) 이상 가지면 농업경영체로 등록해 직불금 등 각종 혜택을 누린다. 당장은 좋지만 동서고금 이렇게 산업이 발전한 경우는 없다. 무작정 보조할 게 아니라 잘하는 사람이 더 혜택을 보는 보상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경영체 기준을 3배로 높이자는 제안을 했다. 전문화·규모화된 이들을 집중 지원해서 산업 경쟁력을 갖추게 하자는 취지다. 비상사태에 대비한 자급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농업 생산성과 규모 확대가 필요하다.

- 기술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농업기술에 있어 가장 큰 숙제는.

▶ 결국 돈의 문제다. 유리온실 하나 지으려면 30억∼40억원이 든다. 주변에 절임배추 공장을 지으려는 사람이 있는데 300억원이 필요하단다. 현 제도에선 그만큼 돈을 빌릴 수 없다. 정부는 ‘1평당 얼마’ 하는 식으로 지원 한도를 둔다. 재정자금의 한계 때문이다. 규모화된 경영체에, 고급 기술에 투자가 이뤄지려면 민간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 최근 민간 은행이 자금을 융자하고 정부는 이차보전으로 지원하는 방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더 바뀌어야 한다.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농신보)의 기능도 강화돼야 한다. 지금은 정책자금에 신용보증을 하는 역할에서 끝난다. 네덜란드 라보뱅크는 담보가 없어도 유망한 기술이 있다면 기술보증을 해준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농민이 더 발전할 수 있게 관리·컨설팅 역할도 한다. 이 과정에서 라보뱅크가 농업전문금융으로 발돋움했다. 우리도 농신보를 이런 방향으로 확대해야 한다. 금융이 산업을 이끌어야 한다.

- 신년사에서 농식품 수출 1000억달러 달성 방안을 모색한다고 했다. 수출에 주목하는 이유는.

▶ 농가소득 차원에서다. 기상이 좋으면 풍년이 돼서 농산물 가격이 떨어진다. 흉년이면 가격이 올라야 하는데 정부가 농산물을 수입해서 가격을 통제한다. 농가는 소득을 어디서 얻을 수 있나. 대안이 식품산업이다. 다만 국내에 공급하고 남는 걸 수출하는 게 아니라, 애당초 식품산업을 수출산업으로 접근해야 한다.

네덜란드도 한해 1300억달러어치를 수출하는데 우리라고 왜 못하나. 반도체·석유화학·자동차에 이어 식품산업에서 수출 1000억달러 돌파가 가능하리라 본다.

그러려면 첨단 식품산업이 돼야 한다. 농산물 원물이나 라면 같은 단순 가공품으로는 안된다. 아주 고차원으로 가공한 걸 초가공식품(ultra processed food)이라고 하는데, 인삼을 예로 들면 홍삼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사포닌을 추출해 소재로서 수출하는 것이다. 이게 가능하도록 정부가 산업 생태계를 만들고 연구개발(R&D) 인프라 투자도 해야 한다. 반도체에 투자하면 15% 세액공제를 해주는 것 같은 지원이 필요하다.

- 농촌소멸 대응도 농어업위의 핵심 과제다. 나아지고 있나.

▶ 정주인구는 어려워도 생활인구는 계속 늘어날 수 있다. 올해 도입되는 ‘체류형 쉼터’가 좋은 대안이다. 다만 군데군데 짓지 말고 집단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거기에 공동시설, 농산물 판매장, 텃밭 등을 설치해주는 것이다. 올해 한국농어촌공사가 3곳에 이런 사업을 진행하는데, 삼성 등 대기업도 공장 주변 농촌에 쉼터 단지를 만들어 직원들이 주말에 쉴 수 있도록 하면 어떤가.

-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 지역개발위원회(삶의질위)’와 통합이 지지부진한데.

▶ 삶의질위는 5년 단위의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 지역개발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우리도 법적으로 ‘농어촌지역 발전 및 복지 증진 등에 관한 사항’을 협의한다. 이 기능을 합치면 시너지가 날 것이다. 법이 개정될 수 있게 여야가 힘을 모아달라.

- 농어업위의 위상과 역할이 애매하다는 지적은 어떻게 보나.

▶ 다수의 위원회와 달리 농어업위는 한시 조직으로 만들어졌다. 상시화돼야 역할이 확립된다. 특히 농어업위가 중장기 정책에 대해 다루는 만큼 상설 전환이 필요하다. 노동·환경 등 사회적 갈등이 있는 분야에선 다리 역할을 하는 조직이 필요하다. 농업분야에선 농어업위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상설화해야 한다.

양석훈 기자 shakun@nongmin.com 사진=김병진 기자

장태평 위원장은

▲1949년 전남 무안 출생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행정고시 20회 ▲재정경제원 법인세제과장 ▲농림수산식품부 농업정책국장 ▲재정경제부 정책홍보관리실장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한국마사회 회장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