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이스라엘 지원 정책에 항의하며 민주당에 등을 돌렸던 미국 내 아랍계·무슬림 유권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친이스라엘’ 내각 구성에 분노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인을 지지했던 일부 무슬림 유권자들은 “트럼프에게 속았다”며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승리 일주일 만에 노골적인 ‘친이스라엘’ 성향을 드러내온 인사들로 외교·안보 요직을 채웠다. 그가 새 정부의 국무장관으로 지명한 마르코 루비오 플로리다주 상원의원은 강성 이스라엘 지지자로, 그는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모든 것을 파괴해야 한다며 “가자지구 휴전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주이스라엘 대사엔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지구 점령을 지지하고 팔레스타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온 극우 개신교 목사 출신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가, 중동 특사엔 유대인이면서 역시 강경 친이스라엘 성향의 부동산 사업가 스티브 위트코프가 각각 발탁됐다.
이밖에 유엔을 “반유대주의의 소굴”이라고 지칭했던 엘리스 스터파닉 하원의원이 주유엔 미국 대사로 지명됐다. ‘친이스라엘 일색’ 외교·안보라인 인선에 당장 이스라엘 정치권은 크게 반색하고 있다.
트럼프 지지 단체 ‘트럼프를 위한 무슬림들(Muslims for Trump)’을 공동 창립한 라비울 초두리는 로이터에 “트럼프 당선인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 것은 우리 덕분”이라며 “우리는 그의 내각 인선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무슬림 참여 및 권리 강화 네트워크’ 대표인 렉시날도 나자르코는 “무슬림 유권자들은 가자지구 전쟁 중단과 중동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인사들로 정부를 구성하길 바랐지만 그런 조짐이 전혀 없다”며 “트럼프 2기 내각이 극단적인 친이스라엘, 전쟁론자들로 채워진 듯하다”고 비판했다.
미국 내 무슬림·아랍계는 전통적으로 반이민 성향의 공화당보다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이스라엘의 중동 전쟁과 미국의 대대적인 무기 지원으로 이번 대선에선 분위기가 달라졌다. 선거 전문가들은 무슬림 유권자들의 지지가 트럼프 당선인이 미시간주에서 승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됐으며, 다른 경합주의 승리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운동 막바지 아랍계 인구가 절반 이상에 달하는 미시간주 디어본을 찾아 지지를 호소하는 등 민주당에 등 돌린 아랍계 유권자들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했다. 중동지역 전쟁 종식과 중동 평화도 약속했다.
이번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 낙선 운동인 ‘해리스 포기(Abandon Harris)’ 캠페인을 주도하며 녹색당 후보 질 스타인을 지지했던 하산 압델 살람은 무슬림 커뮤니티가 트럼프 캠프의 약속에 “속아 넘어갔다”며 상당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내에서 아랍계 유권자 비율이 가장 높은 디어본에서 트럼프 당선인은 42%를 득표하며 승리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36%를 얻어 2위를 차지했으나 2020년 대선 당시 바이든 대통령이 이 지역에서 압승한 것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득표율이었다. 녹색당 스타인 후보가 20%를 득표하며 양당 모두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선거 직후 발표된 전국 단위 출구조사에서 무슬림 유권자 10명 가운데 6명이 민주당에 투표했으나, 이 역시 지난 대선에서 비해선 현저히 감소한 수치였다.
무슬림 미국인 옹호단체 엠게이지의 대표 와엘 알자야트는 CNN에 “만약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정부의 중동 정책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면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무슬림 지지율은 90%에 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