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대통령의 독서]다시 책 읽는 대통령을 기다리며

2025-02-11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도자는 책과 연결된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남아수독오거서”(사내라면 모름지기 평생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고, 서양에는 “All leaders are readers”(모든 지도자는 책을 읽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파병을 결정했던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이 남긴 이 문장은 몇 해 전 “Readers are leaders”(책 읽는 사람이 지도자)라는 표현으로 회자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책 보내기 운동을 일으켰다. 당시 미국 시민단체의 작가, 교육자 회원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펼친 캠페인이었다.

<대통령의 독서>의 저자 신동호 시인은 이 책을 쓴 이유에 대해 “대통령의 독서는 비단 한 사람의 독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독서”라면서 “책은 ‘나의 판단을 검증하고 의심하게 하는 힘’이 된다. 특히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자신을 성찰할 기회를 마련하기 힘든 권력의 중심에서 책은 타인의 삶, 타인의 생각과 심도 깊게 연결시키는 통로”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청와대 연설비서관으로 5년을 지내면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연설과 메시지 작성을 보좌했다. 책에는 역대 대통령의 연설문, 담화문, 기고문에 담긴 독서의 자취를 담았다. 어떤 책이 대통령 생각의 씨앗이 되어 그의 말과 글로 탄생했는지, 한 권의 책이 어떻게 지도자의 가치관, 세계관, 역사관의 토대가 되는지 그 경로를 살펴보고 있다.

장 자크 루소의 저서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기치로 요약되어 프랑스혁명을 불러왔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 불복종>은 간디와 넬슨 만델라, 마틴 루서 킹을 감화시켜 흑인‧노예 해방, 권리 신장 운동을 가능하게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수감생활 중에 읽은 <제3의 물결>은 수십 년 뒤 “우리의 자라나는 세대가 지식정보사회의 주역이 되도록 힘쓰겠다”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로 만들어 정보 대국의 토대를 튼튼히 닦아 나가겠다”란 취임사의 토대가 됐다.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을 이야기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소유의 종말>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대통령의 책으로 회자되고 널리 읽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읽은 <소년이 온다>는 제37주년 5.18 민주화우동 기념사에서 되살아났고,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기고한 ‘평범함의 위대함’이란 글로도 재탄생됐다. 또 청와대 국민청원제도를 신설하게 된 계기가 됐다.

책에서 저자는 대통령의 연설문이 나오는 과정에 대해 “지난 연설비서관 시절 서너 권의 책을 읽고 연설문 딱 한 줄을 쓰는 날이 비일비재했다”고 고백하면서 “수많은 현장 경험, 꼼꼼하고 성실한 자료조사, 연설문 전문과 발췌문을 번갈아 살피면서 대통령의 생각의 지도를 촘촘히 따라가는 구성으로 신뢰받는 언어를 구사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저자는 또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균형발전으로 격차를 줄이려고 했고, 윤석열 대통령 역시 ‘노무현 정신을 배우겠다’며 국민통합을 강조했다”면서 “그런데도 왜 우리사회에 양극화는 깊어지고 갈등은 커질까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통합은 정치적 노력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정치에서 통합은 흔히 전체주의로 빠지기 쉽다. 통합은 개인의 ‘도덕적 투쟁’(빅토르 위고의 <세 아이들> <93년>)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도종환 전 문화체육부 장관은 추천의 글에서 “이 책에서 만나는 연설문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적 이성의 핵심으로 여겼던 신중함과 절제와 균형이 돋보인다. 대통령의 언어는 결과에 대한 책임 때문에 신중해야 하고, 당위와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하며, 듣는 이들을 존중하기 때문에 절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대통령의 균형 잡힌 언어는 균형 잡힌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고도의 정치 행위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 전 장관은 “이 책은 대통령의 독서의 힘이 연설문의 요소 요소에 어떻게 반영되어 나타났는지, 한 권의 책이 대통령의 생각과 철학에 스며들어 얼마나 품격 있는 언어를 만들어 냈는지를 자세히 보여준다. 문학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정치적으로 격조 높은 연설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친절하게 알려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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