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다가온 리얼 AI 시대… 제조업 한국 이대로 몰락할텐가 [View & Insight]

2025-01-12

올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의 주인공은 젠슨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였다. 약 1만2000 명이 몰린 그의 키노트 현장은 마치 록스타의 콘서트를 방불케하는 열기 속에서 진행됐다. 그가 '실체 있는 인공지능(AI)'과 같은 AI의 새로운 개념이나 제품을 소개할 때마다 관객석에서는 열광적인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젠슨 황의 2시간짜리 쇼타임을 바라보는 국내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기대감보다 초조함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더 많았다. AI가 주도하는 대격변의 전선에서 한국이 이미 소리 없이 밀려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삼성전자나 LG전자, 현대자동차 등은 물론 조선·방위산업 등 제조업의 하드웨어로 세계를 제패하고 있었는데, 너무 빨리 바뀌고 있는 AI의 시대에는 몰락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몰락의 징후는 더 짙어지고 있다는 게 CES 2025 현장에서 본 많은 국내 기업·전문가들의 평가다.

젠슨 황이 올해 CES에서 공개한 '코스모스' 프로그램의 핵심은 결국 실제와 같은 가상의 공간에서 데이터 학습이다. 완성차 업체가 자율주행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자율주행 데이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이 분야에서 20억 마일(약 32억 km) 이상 고객 주행 데이터를 AI에 학습 시켜 자율주행을 구현한 테슬라를 기존 업체가 따라잡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세계와 같은(옴니버스) '합성데이터'를 만들어 학습의 격차를 따라잡는 코스모스를 통해 테슬라와 경쟁해 보라는 것이다. 세계 1위 자동차 업체인 토요타와 3위 현대자동차 그룹이 엔비디아와 협업을 선언한 것은 '선택'이라기 보다 거의 '강요' 내지 어쩔 수 없는 선택에 가까웠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사실 미국 빅테크가 전세계 산업 혁신을 주도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AI 시대가 오기 전인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스마트폰 혁신의 시대에는 애플과 구글 진영이 서로 나눠 전세계 산업 지도를 뒤바꿔 놨다.

이 시기에 한국이 약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있다. 구글 진영에 서서 제조업 밸류체인을 장악했던 덕분에 한국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은 이 시기 기술 수준은 물론이고 원가 경쟁력 등에서 다른 나라를 압도하면서 살아남았고 한때 경쟁자로 불렸던 대만 HTC가 이 과정에서 몰락했다. 안드로이드 계열의 맹주가 된 삼성은 스마트폰의 두뇌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와 운영체제(OS)까지 직접 개발해가면서 스마트폰 시대에서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대에 이은 AI 시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테슬라가 자동차를 하나의 커다란 'AI 덩어리'로 만들어내는 동안 레거시 완성차 업체들이 사실상 경쟁에서 밀려났다. 독일 폭스바겐같은 업체는 공장을 폐쇄해야 할 정도로 도산 위기에 몰려 있고 창사 이후 최고 속도로 질주하고 있는 현대차·기아조차도 AI에서만큼은 테슬라에 명함을 내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CES를 맞아 미국에서 테슬라 사이버트럭 완전자율주행(FSD)와 웨이모 로보택시를 체험해본 뒤 충격을 받았다"며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찾아왔다"고 전했다.

그나마 현대차 같은 대표 선수가 있는 모빌리티 분야는 아직 희망이 있다. 한국이 여전히 강점을 가지고 있는 제조업 체인에서 승부를 걸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젠슨 황이 주창한 이른바 '피지컬(실체 있는) AI' 분야로 가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피지컬 AI의 최종 지향점인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분야를 이미 중국 업체들이 장악했기 때문이다.

실제 젠슨 황의 키노트에서는 14개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연단에 섰는데 이중 6개가 중국 업체 로봇이었다. 현대차가 인수한 보스톤다이내믹스의 'E-아틀라스'만이 유일하게 이들 중국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우리나라 제조업을 상징하는 삼성이나 LG는 젠슨 황의 키노트에서 철저히 외면 당했다. 구자은 LS그룹 회장은 CES행사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나라가 하드웨어 제조기술에서 앞서 전세계를 제패했는데 그 자리를 중국에 빼앗기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AI 생태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이 1등 아니냐는 반론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분석조차도 "절반만 맞는 이야기"라고 지적한다.

당장 젠슨 황은 이번 키노트에서 자사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인 RTX50 시리즈에 "마이크론 메모리가 탑재된다"면서 "삼성과 SK하이닉스는 그래픽더블데이터레이트(DDR)7 메모리를 만들지 않지 않느냐"고 밝혔다가 뒤늦게 "삼성이 초도 공급을 맡았다"고 정정했다. 반대로 말하면 마이크론이든 삼성이든 아니면 또 다른 업체든 엔비디아에게는 별로 중요한 변수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AI 시대에 대한민국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대만TSMC 처럼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제조업 경쟁력을 갖추는 길 뿐이라고 지적한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CES 현장에서 보니 우리나라 제조업이 응급실에 들어가야 할 정도로 최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걸 실감했다"며 "현재 최고 경쟁력을 보유한 메모리만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게 주 52시간과 같은 규제를 완화하고 반도체·디스플레이 등으로 제한돼 있는 국가첨단산업 세액공제 항목에 로봇산업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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