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신들, 딥시크 본사 찾았지만 방문 불발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 대표도 모습 안 드러내
항저우, 량원펑 대표 등 ‘6마리 용’ 배출 요람
해외 유학파 아닌 중국 토종 신화에 이목 쏠려
량원펑 모교인 저장대 구성원 자부심도 상승
中, ‘의대 쏠림’ 韓과 달리 우수 인재 공대 선호
“회사에 있는 인력 대부분은 연구진으로, 연구 업무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취재 응대가 어렵습니다.”
낮은 개발비용과 뛰어난 성능의 인공지능(AI) 모델 ‘딥시크 R1’으로 전 세계를 뒤흔든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 항저우 본사를 5일 찾은 기자에게 회사 관계자는 “사전예약 없이는 본사 내부로 들어갈 수 없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예약 없이 진입이 불가하다면서도 “내부에 문의는 해보겠다. 회사 측에서 동의하면 본사 사무실로 안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적사항을 전달하고 기다렸지만 결국 본사 방문은 불발됐다. 중국 매체의 기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근 국제 사회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딥시크 본사를 취재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기자들이 왔지만 회사는 쉽게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전날 외신 기자로 보이는 이가 회사 건물 전경을 몇 장 촬영했고, 이날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를 비롯한 현지 언론사 기자들과 일본 요미우리신문 기자 등 10여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5일은 긴 춘제(중국의 설) 연휴를 마친 뒤 첫날로, 회사 분위기는 차분했다. 딥시크 본사가 입주한 오피스 건물은 여느 평일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오전 7시쯤 건물 경비원은 “아직 (딥시크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딥시크가 건물에 입주한 것은 알고 있지만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梁文鋒) 대표는 본 적이 없으며, 사진을 보여줘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오전 8시가 되자 직원들이 하나둘 출근하며 사옥 앞이 점차 분주해졌다. 연구 인력으로 보이는 이들이 빠른 걸음으로 건물 안으로 향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딥시크가 입주한 고층 오피스 빌딩은 1층 커피숍과 상가를 제외하고는 거의 건물 전체에 아무런 간판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입주 기업 이외에는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했으며, 이에 주소를 미리 알고 찾아간 기자도 이곳이 맞는지 재차 확인해야 했다. 다만 본사 건물 1층에는 딥시크 방문객을 위한 별도의 공간이 마련돼 있었고, 해당 창구의 직원은 “최근 방문객이 늘었다”며 “사전에 약속이 된 경우, 이곳에서 기다리면 딥시크 직원이 내려와 안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딥시크 방문객 응대 창구’라는 표지판은 사람이 늘어나면서 치워졌다. 회사 관계자는 표지판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지 말 것을 요구했는데, 이는 딥시크 입주 사실이 불필요하게 확산되는 것을 피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한 현지 매체 기자는 “춘제 연휴 기간에도 취재차 방문한 기자들이 여럿 있었지만 모두 회사 방문은 거절당했다고 들었다”며 “우리도 사전예약을 하지 않았는데, 사실 들여보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항저우를 기반으로 한 뉴미디어 매체 기자는 “이전에 량 대표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며 “하지만 그때 딥시크는 그리 주목받지 않는 회사여서 후순위로 밀렸고, 결국 인터뷰가 성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이렇게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딥시크뿐 아니다… ‘항저우의 6마리 용’
딥시크의 성공에 량 대표를 배출한 공학 명문 저장대학교와 딥시크 본사가 있는 항저우시가 주목받고 있다. 항저우는 중국의 과학기술 혁신을 이끌 도시로 부상하고 있으며, 해외 유학파 출신이 아닌 중국 본토 출신들이 잇따라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중국 테크 업계에서는 ‘항저우 6샤오룽(六小龍)’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항저우에 있는 6마리의 작은 용’이라는 의미로 딥시크를 포함한 항저우 기반의 6대 신생 테크기업을 가리키는 말이다. 딥시크를 제외하면 6샤오룽 중에서는 테슬라를 위협하는 로봇 업체인 유니트리가 가장 눈에 띈다. 유니트리는 올해 춘제 갈라쇼에서 군무를 추는 휴머노이드 로봇 ‘H1’을 통해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딥시크와 마찬가지로 유니트리의 강점 역시 가성비다. 최근 출시한 H1의 업그레이드 버전 ‘G1’ 가격은 1만6000달러(약 2319만원)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생산을 예고한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의 예상 가격이 3만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절반가량이며, 머스크 CEO가 대량생산이 이뤄지면 옵티머스 가격이 2만달러 선으로 떨어진다고 언급한 것과 비교해도 저렴하다.
나머지 6룡은 로봇업체 딥로보틱스, 지난해 게임 ‘검은신화: 오공’으로 흥행을 한 게임사이언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분야 브레인코, 3D프린팅 업체 매니코어 등이다. 특히 이들 업체 중 AI를 기반으로 뇌파와 근육 신호를 인식해 움직이는 의수·의족 로봇 개발사 브레인코의 한비청(韓璧丞) 창업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에서 학부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날 딥시크 본사 방문에 이어 마찬가지로 항저우에 있는 유니트리 본사 사옥도 찾았다. 흔히 보이는 중소기업 건물 같은 외관을 하고 있었다. 유니트리 관계자는 “사세가 확장되면서 옆에 붙어 있는 회사 건물도 인수해 사무실로 쓰고 있다”고 설명했는데, 그곳에는 이전에 건물을 쓰던 회사의 것으로 보이는 간판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이런 소박한 곳에서 테슬라를 이길 만한 로봇이 만들어지는 것을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회사 안내를 맡은 첸위치(錢雨琪) 유니트리 마케팅 매니저는 “평소에는 왕싱싱(王興興) 대표도 이 건물로 출근해 일한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의 주축이 ‘주링허우’(1990년대 출생자)라고 설명했다. 유니트리 창업자인 왕 대표 역시 1990년생이다.
◆딥시크 요람 저장대, 구성원 자부심도 상승
전날에는 량 대표의 모교인 저장대학교를 방문했다. 춘제 연휴 마지막 날이라 학생들은 많지 않았지만, 외부 방문객들이 상당했다. 중·고등학생과 부모님 손을 잡고 온 어린아이들까지 캠퍼스를 찾았다. 근처에 거주하는 7세 왕모군의 부모는 “인근에 거주해 평소에도 나들이 삼아 자주 오지만, 요즘은 조금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며 “아이에게도 딥시크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말했다.
저장대 컴퓨터공학과 3학년 학생 천모(24)씨는 “저장대에서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탐구하고 자율적인 연구개발을 하도록 한다”며 “딥시크의 성공도 이런 데서 기인했으며, 량 대표의 통찰력과 실행력이 뒷받침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졸업 후에 바이트댄스(틱톡 모회사)에 입사하고 싶으며, 바이트댄스에서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뒤에는 나 역시 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캠퍼스에서 만난 한 화학과 교수는 “나는 나이가 많아서 직접 딥시크의 AI 서비스를 사용해 보지는 않았지만, 최근 그 명성이 크게 올라간 것은 알고 있다”며 학교 내에서도 딥시크와 관련한 관심이 커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의대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라는 학생은 자신은 량 대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그와 관련된 정보를 술술 읊기도 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해 세계 3대 AI 학회인 신경정보처리시스템학회(NeurIPS), 국제머신러닝학회(ICML), 표준학습국제학회(ICLR)에 채택된 논문을 저자와 소속 연구 기관 등으로 분석한 결과 저자 수가 많은 상위 10개 기관에 미국이 6곳, 중국이 4곳 올랐다고 지난달 보도한 바 있다. 1위는 미국 구글, 2위는 중국 칭화대, 3위는 미국 스탠퍼드대였고, 저장대는 베이징대와 함께 공동 6위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의 최고 인재들이 한국처럼 의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공대로 몰리는 것이 최근 중국 AI 발전의 토대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 이과형 인재들이 공대로 몰리는 현상은 일반적으로 취업이 다른 전공에 비해 쉽고, 고임금을 받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전기차나 AI 같은 신산업을 대대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말 중국 온라인상에 공개된 ‘취업률 상위 50위 전공’을 보면 절반 이상을 공학 계열 전공이 차지했다.
항저우=글·사진 이우중 특파원 l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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