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연의 공약은 없는가? 남 욕하느라 돈만 쓰고 댕기는 것 같은디?”
최근 많은 사랑을 받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대사 한 대목이다. 제주 도동리 어촌계장 선거에서 경쟁자 오애순(문소리)에 ‘네거티브’ 공세를 퍼붓는 부상길(최대훈)에게 도동리 주민이 한 질문이다. 그런 공세에도 애순은 당당히 계장 자리에 올라 그를 지지한 주민들과 가족, 시청자에게 감동을 준다. 그런데 사실 애순을 당선시킨 것도 ‘네거티브’였다. 부상길이 바람피웠다는 소문을 낸 것이다. 애순 본연의 공약이 있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해외는 몰라도 한국 시청자들은 여기서 이상한 점을 거의 못 느꼈을 것이다. 어쨌든 부상길은 나쁜 사람이고 애순은 좋은 사람이니까.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이번 선거는 무엇보다도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계기여야 한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가장 먼저 출사표를 던졌다. 준비한 동영상에서 온화한 모습을 보인 것은 반대파들이 퍼트려 온 부정적 이미지를 벗으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 ‘잘사니즘’ 등 다소 추상적인 구호는 중도층을 의식해서 정한 듯하다. 참모들은 그의 진면목을 담은 책을 펴내겠다고 한다. 그에 비해 대부분의 다른 예비 후보들은 “이재명은 안 되는 이유”로 출마 선언을 갈음하고 있다.
문제는 민주주의하에서의 선거는 ‘좋은 사람 뽑기 대회’가 아니라는 점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나쁜 사람’이었으니 이제 ‘좋은 사람’을 뽑자는 쪽과, 이 전 대표도 ‘못지않게 나쁜 사람’이라는 쪽이 싸우는 식이라면 결론이 어떻든 비정상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지난 대선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지난 3년이 비정상이었던 것은 대통령 당선을 개인의 승리로, 자기 성공 서사의 완성 과정으로 여긴 사람과 그 무리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능력으로 쟁취했으므로, 대통령의 모든 권한과 자원은 전리품이자 논공행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었다. 그의 정책을 ‘거대 야당’이 사사건건 반대한 것은 승리자 서사의 훼손이고 선거 불복이었다. 가족의 불법 탈법이 지탄받은 건 영웅 서사 중 고난 단계 정도로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계엄과 탄핵을 거치고서야 다시 리더를 뽑게 된 이 시점에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바로 ‘한 인간의 성공 스토리’에 지지를 호소하는 정치인이다. 그리고 “이런 좋은 사람을 왜 몰라주느냐”면서 일체의 비판을 막고,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부총질’이라 몰아붙이는 과열된 지지 세력이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다르지 않으냐?”고도 하겠지만 상당히 다른 게 사실이라 해도 그게 선거의 초점이어서는 안 된다.
한국 사회 문제들은 너무나 복잡해 선의로만 해결할 수 없다. 임금을 올리자면 자영업자가,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면 ‘영끌’한 서민들이 곡소리를 낼 것이다. 의대 증원, 국민연금 개혁 등 현안부터가 모두를 만족시킬 정답 같은 건 없는 문제들이다. 따라서 어떤 방향으로든 사회를 진전시키려면 분명한 가치를 내세우고 그로써 최대한 많은 사람을 설득해 내야 한다. 어떤 가치를 최우선에 두는지 모르는데 그저 ‘좋은 사람’이니까 뽑아줄 수는 없다. 사실은 어촌계장 선거여도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