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어릴 때 나는 사랑을 하게 되면 눈물이 저절로 나오는 줄 알았다. 나훈아 선생 덕분이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눈가에 흐르는 촉촉한 물기가 무엇이냐”고 묻자 소년이 답한다. “눈물”이라고. 다시 “눈물이 왜 나오느냐”고 묻자 소년이 답한다. “인간은 슬플 때 눈물이 나온다”고. 사이보그 인조인간에게 없는 액체에 대해 주인공 존 코너가 설명하고 있다. 영화 ‘터미네이터2’의 마지막 장면이다.
미래의 인류를 구원할 지도자를 위해 스카이넷과 싸우던 터미네이터가 임무를 완수하자 펄펄 끓는 용광로에 스스로 몸을 던지려 하던 바로 그 순간이다. 터미네이터는 존이 흘리는 눈물을 응시하며 묘한 표정으로 스스로 몸을 던진다. 감정이 전혀 없는 인조인간이 문득 자극받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서 터져 나오는 이상한 액체, 즉 눈물이었다.

인공지능(AI)이 아니면 화제가 되지 않은 오늘날, AI 로봇과 인간과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나는 제임스 캐머런의 이 영화를 보면서 결국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인간애 또는 ‘sympathy(연민의 정)’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해 흘리는 눈물이야말로 휴머니즘의 결정체가 아닐까?
“선수 때 그렇게 우승을 많이 해도 울지 않았는데, 인생 참 모르겠네요.” 프로배구 여자부 정관장 고희진(45) 감독의 말이다. 지난 10일 출국장으로 향하는 ‘인도네시아 특급’ 메가를 포옹하며 키 큰 남자 고 감독이 펑펑 울어 큰 화제가 됐다. TV를 보던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 혼났다. 눈물은 이처럼 힘이 세다. 특히 여자의 눈물을 이기는 남자는 이 세상에 없다. 가히 천하무적이다. 그리고 여자에게는 맘만 먹으면 즉각 흘릴 수 있는 눈물의 양이 엄청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은 여간 의미심장한 게 아니다. 그래서 천국으로 가는 문은 기도에는 닫혀 있지만, 눈물에는 열리게 된다고 했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