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000670)·MBK파트너스와 경영권 분쟁을 벌여온 최윤범 고려아연(010130) 회장이 영풍을 향한 역공 카드를 잇따라 꺼내 들고 있다. 올 3월 정기 주주총회 안건으로 집중투표제 및 현물 배당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의 건을 올려 표 대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또 영풍 이사회에 사외이사를 진입시켜 회사의 경영에 관여하겠다는 뜻도 공식화했다.
5일 영풍정밀(036560)은 “영풍 주총에서 집중투표제를 비롯해 현물 배당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의 건과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 안건 등을 의안으로 상정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현재 영풍은 장형진 고문의 장남 장세준 코리아써키트 사장 등 특수관계인이 지분 52.77%를 보유하고 있다. 최 회장 측은 영풍정밀 등 특수관계인 포함 14.84%를 보유 중이다. 집중투표제 정관 변경 안건은 최 회장 측 의도대로 통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주주 의결권이 최대 3%로 제한되며(3%룰)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가결되기 때문이다. 영풍 지분 3% 이상을 보유한 머스트자산운용이 이날 영풍 측에 사외이사 추천 주주 제안을 하면서 최 회장 일가와 연합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이번 영풍정밀의 주주 제안 중 현물 배당 정관 변경의 건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영풍이 보유한 현물 중 가장 큰 자산은 서울 시내 빌딩들과 고려아연 지분(25.42%)인데 빌딩을 수천 명의 주주들에게 현물 출자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 말 기준 영풍 소액주주 수는 5309명이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물 배당 정관 변경은 결국 고려아연 주식을 배당하라는 의미”라며 “만약 통과되면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이 전체 주주들에게 뿌려질 수 있어 영풍 측의 고려아연 지배력이 약화되는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 회장 측 관계자도 “(현물 출자 주주 제안은) 고려아연 주식을 배당하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현물 배당 정관 변경의 건은 3%룰이 적용되지 않아 곧장 통과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영풍정밀은 감사위원 후보로 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을 지낸 공인회계사도 추천했다. 영풍정밀은 추천 배경에 대해 “독립적 감사위원을 선임해 영풍의 충당부채 과소 산정 여부와 석포제련소 2개월 조업 정지에 따른 예상 손실 규모 및 대책, MBK와의 경영 협력 계약의 구체적 내용 등에 대한 공정하고 면밀한 감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최 회장 측이 영풍을 향한 역공을 대대적으로 펼치면서 경영권 분쟁의 전선은 영풍으로 옮겨붙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최 회장 측은 지난달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영풍그룹에 의도적으로 순환출자 고리를 만든 끝에 영풍의 고려아연 의결권을 제한시켰다. 이어 임시 주총 당일 표 대결에서 손쉽게 승리한 뒤 일단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IB 업계 관계자는 “영풍 주주 제안으로 상당한 압박을 펼치면서 MBK와의 연합 전선을 흐트러트리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영풍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최 회장이 1대 주주를 무시하며 벌인 만행들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를 할 마음이 없다면 어떠한 타협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며 “고려아연의 1대 주주로서 회사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결심은 시간이 지나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