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말이라고 하죠. 하지만 이 말은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격언으로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의 앞마당 어딘가에 새겨져 있던 말이라고도 합니다. 연말이고 새로운 해를 앞두고 있다 보니 새로운 목표, 새로운 변화에 대해 생각이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에 새로운 변화의 시작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말씀드려볼까 싶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 그렇습니다. 모든 변화의 실마리는 나 자신을 아는 것에서부터 비롯됩니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나 자신의 부족함을 분명하게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여러분들은 스스로를 얼마나 잘 알고 계신가요? 많은 삶의 문제가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들은 초라하기 그지없이, 허약하고 부족한 상태로 태어납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태어난 생명은 하나도 없습니다. 태어난 환경도 다 다릅니다. 세상을 살고 가는 시기도 다 다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저는 지금 치과의사이고,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이고, 나름 여러 가지 성취를 이루었고, 앞으로도 많은 일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만, 사실을 한 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사실 저는 그리 똑똑하지 않습니다. 되려 상당히 멍청합니다.
천성이 부지런하지도 않습니다. 되려 상당히 게으릅니다. 생각보다 끈기가 없습니다. 상당히 포기도 빠르구요. 애초에 태어나길 체력이 약하기도 하고 남들보다 잠도 많은 편입니다. 저는 보기보다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특정 영역에서는 나름 전문가로 자부하기도 하지만, 삶의 다른 많은 영역에서는 아직도 초보요, 허당입니다.
저는 남들에게 실로 착한 사람이 못됩니다. 상당히 냉정하고 때론 독하고 또 서운하게 만드는 그런 일들이 많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그렇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겨 먹은, 한계가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깊게 자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 자신의 허약함과 한계를 자각하면서부터 이를 극복하고 초월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똑똑하지 않고 상당히 멍청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가능하면 ‘기억하면서 살 일’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거짓말은 당연히 할 수 없죠. 금방 탄로나기 때문입니다. 천성이 부지런하지 못하고 게으름 피우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실제로 틈틈이 ‘반드시’ 게으름을 피웁니다. 바쁜 와중일지라도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시간을 먼저 확보해 놓고 그러고 난 다음에 집중할 시간을 안배합니다. 그렇게 하면 실제로 집중력이 높아지고 몰입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것을 ‘Crisis maker’라고 하더라구요.
끈기가 부족하고 포기가 빠르기도 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시도했다가도 금방 포기하거나 실패할 것이라는, 결국 여러 번 시도하게 될 것이라는 그런 가정 ‘자체’를 ‘미리’ 포함시켜 일을 계획합니다.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쳐 힘들 것 같은 일은 ‘장기적’으로 계획할 수밖에 없습니다. 허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제 전문영역이 아닌 다른 곳에 가서는 함부로 가타부타, 왈가불가 하지 않고 잠자코 듣기만 합니다. 겸손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문외한, 허당이기 때문에 겸손을 가장해야 하는 그런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나란 사람, 어차피 혼자이고 고독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선을 긋고 넘어오지 못하게 하다보니 냉정하고 독하다는 서운한 말을 많이 듣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따름입니다.
저는 제 스스로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적어도 이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한계를 인정하고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대로 살 수도 있는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머물러 있기에는 제가 그리 성숙한 인간이지도 못하다는 것을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가진 게 없고 성취하지 못해도 불평불만이 없으면 된다고 하는데, 저는 불만이 생기더라구요.
상대적으로 세상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였습니다. 게다가 세상은 점점 발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상대적으로 나는 점점 퇴보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스스로 자족할 수 없을 바엔 차라리 내 스스로의 한계를 직시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서 나를 확장해 가는 노력을 하는 것이 의미있는 인생이겠다 싶은 것이 바로 변화의 단초가 되는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변화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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