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마케도니아 출신 나토 ‘2인자’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10-22

“이 자리에 오기까지 꼭 30년이 걸렸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한창이던 2021년 9월 미국 펜타곤(전쟁부 청사)을 방문한 라드밀라 셰케린스카 당시 북(北)마케도니아 국방부 장관이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한 말이다. 셰케린스카가 찾은 곳은 펜타곤 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기념실이었다. 나토 맹주에 해당하는 미국의 성조기를 비롯해 모든 회원국들 국기가 내걸린 장소다. 1991년 독립국이 된 북마케도니아가 그로부터 30년 만에 자국 국기를 이 나토 기념실에 세웠다는 자부심이 깔려 있다. 북마케도니아의 나토 가입이 한 해 전인 2020년 확정된 만큼 그 국기도 진작 기념실에 전시했어야 옳다. 하지만 코로나19 탓에 모든 국제 행사가 미뤄지거나 취소되며 북마케도니아 국기의 나토 기념실 ‘입주’는 1년 연기됐다.

셰케린스카가 언급한 30년이란 세월에 북마케도니아 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북마케도니아는 원래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 탄생한 옛 유고슬라비아의 일부로 출발했다. 이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그리고 마케도니아까지 다민족으로 구성된 연방국가였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공산국가가 되었으나 소련(현 러시아) 영향권에 들어가진 않았다. 1990년대 들어 동서 냉전이 끝나자 옛 유고 연방에선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렸다. 소수민족들 간에 분쟁이 끊이지 않다가 결국 연방 해체의 길을 겪었고 마케도니아는 1991년 독립국이 되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독립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이 즉각 유럽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 것과 달리 신생국 마케도니아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국경을 접한 이웃 그리스의 견제 때문이었다.

기원전 300년대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드로스 3세(알렉산더 대왕)의 이름은 서양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그 알렉산더 대왕의 근거지가 바로 마케도니아다. 옛 유고 연방과 그리스 영토에 걸쳐 있는 지역을 일컫는 ‘마케도니아’라는 지명이 마케도니아의 독립과 더불어 분쟁의 원인으로 부상한 것이다.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국토, 문화 그리고 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그리스의 집요한 문제 제기에 그리스의 기존 우방국들은 마케도니아와의 관계 개선을 주저했다. 그리스가 회원국으로 있는 유럽연합(EU)과 나토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마케도니아는 2019년 ‘(그리스 땅인) 마케도니아의 북쪽에 있는 나라’라는 뜻에서 국호(國號)를 북마케도니아로 고친 뒤에야 ‘외톨이’ 신세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듬해인 2020년 국가적 염원이던 나토 가입을 성사시킨 데 이어 현재는 EU와 정식 회원국 지위를 놓고 협상 중이다.

2024년 11월 북마케도니아 출신 셰케린스카가 나토 사무차장에 발탁됐다. 국방장관 시절 조국의 나토 가입을 이끈 그가 나토 사무총장에 이은 ‘2인자’로 우뚝 선 것이다. 인구 200만명의 작은 나라 북마케도니아로선 나토의 일원이 되고 불과 4년 만에 그 최고위급 간부를 배출한 만큼 국가적 경사가 아닐 수 없다. 21일 한국을 찾은 셰케린스카 나토 사무차장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만나 나토·한국 파트너십 심화, 특히 방위산업 분야에서의 협력 강화를 논의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심각한 안보 불안감에 사로잡힌 나토 회원국들이 저마다 군비 증강에 혈안이 된 가운데 신흥 방산 강국인 한국의 무기 체계가 주목을 받고 있다. 셰케린스카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 무기가 나토 회원국, 그중에서도 동유럽 신흥국들로 진출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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