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여, 죽음을 죽여주소서!

2024-10-07

지난달 마크 저커버그가 증강현실 안경 ‘오라이언’을 최초 공개했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그는 이것이 스마트폰 다음의 차세대 디바이스가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또다시 ‘증강’이라는 단어가 들려오자 몇 년 전 흥미롭게 읽은 『트랜스 휴머니즘』이 떠올랐다. 기술로 인간의 현실을 증강시켜 우리가 마지막으로 도전할 과제는 무엇일까. 트랜스 휴머니스트들은 자연의 최종명령, 죽음이라고 대답한다.

트랜스 휴머니즘은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을 기술로 극복하자는 운동으로, 노화나 죽음도 치료되어야 할 질병처럼 여긴다. 저자인 아일랜드 출신 저널리스트 마크 오코널은 인간의 취약함에서 비롯된 이 운동의 동기에는 공감하며 여러 단체와 인물을 만난다. 인체냉동보전 시설인 알코어 재단이나 ‘구글이여, 죽음을 해결해주소서!’라고 시위를 벌이는 자들, 전자장치를 피부에 이식해 사이보그가 되어가는 바이오 해커 집단 등을 보고 있으면 기술이 종교의 자리를 대체한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책의 백미는 트랜스 휴머니스트 당을 만들어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졸탄 이슈트반의 유세에 동행한 부분이다. 백만장자인 졸탄에게는 20대의 추종자 로언이 있다. 이들은 관 모양으로 개조한 구식 캠핑카에 ‘불멸버스’라는 이름을 붙이고 유세를 다니는데, 시속 50㎞로 가면서도 내내 엔진오일이 샌다. 이들의 시트콤 같은 ‘불멸운동’을 지켜보고 있으면 웃음이 터지다가도 인간종에 대한 우수 어린 감정이 든다. 특히 술도, 연애도, 직업도 없이 오로지 영생만을 바라며 중세 수도승처럼 살아가는 자원봉사자 로언은 이 책의 모든 천재와 괴짜들을 물리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다. 기이하게 순수한, 비틀려버린 피터 팬 같다고 할까.

저자는 수많은 미래주의자들을 만나며 오히려 ‘현재’를 본다. ‘기묘한 사람들, 기묘한 사상들, 기묘한 기계들로 가득한 현재’를 통과하며 만난 것은 결국 기술이 아니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욕망의 풍경들이기 때문에.

김성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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