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와 페르소나, 조커의 선택 [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2024-10-07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이 있다. 가까이서 자주 보는 사람들은 얼굴 표정, 행동, 목소리, 자세 등을 무의식적으로 서로 모방하다가 동화되기 때문이다. 행복도 전염된다. 연구에 따르면 개인이 행복할 경우 친구가 행복할 확률이 15%이고 그 친구의 친구가 행복할 확률은 10%, 그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행복할 확률은 5%까지 증가한다고 한다. 그만큼 감정의 전염성은 강력하다. 반대로 우울증이나 정신질환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예가 공유정신병인데 가족과 같이 아주 가까운 사람이 정신질환에 걸렸을 때, 그 사람의 망상과 환각을 가까운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영화 ‘조커: 폴리 아 되(Folie à Deux)의 부제 역시 망상과 광기를 공유한다는 공유정신병을 뜻을 지닌 불어로 ‘조커’의 후속작이다.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분)은 머레이 프랭클린쇼 생방송 중 머레이(로버트 드니로 분)를 죽인 혐의로 고담시의 아캄 수용소에 갇혀 지낸다. 점점 웃음과 농담을 잃고 지내는 그에게 리 퀸젤(레이디 가가 분)이 다가온다. 불우하게 자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리는 아서를 동경하고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한편, 아서는 5명을 죽인 혐의로 재판을 앞둔 상태인데 리의 등장으로 재판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급기야 아서는 스스로를 변호하며 아서라는 자신과 조커라는 인격 사이에게 갈등한다.

자아와 페르소나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내면을 보여준다. 아서는 그동안 사람들에게 비웃음과 천대의 대상이었고 부모한테서 조차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했다. 억눌린 삶을 살아왔던 아서가 조커라는 이름으로 분노를 표출하자 대중들은 그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하지만 아서 플렉의 인간성을 믿고 조커가 되지 않기를 바랐던 변호사와 달리 리는 아서가 지닌 내면과 달리 외부에 드러난 이미지인 페르소나를 동경하고 사랑한다. 영화는 아서의 망상과 혼란을 담는데 치중하면서 동시에 자아와 페르소나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인물에 내면을 보여준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게 되는데, 토드 필립스 감독은 아서 플렉의 정신세계를 다루며 망상과 현실 사이의 모호함에 집중한다. 예상치 못하게 흐르는 뮤지컬 로맨스와 부조리극의 전형을 따르는 이야기 전개는 몽상적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됐다.

영화는 아서의 슬픈 사랑을 이야기한다. 앙상하게 가죽만 간신히 남긴 채, 매마른 모습으로 살던 아서 플렉은 리를 만난 후, 현실과 망상을 오가다 결국에는 비극을 마주한다. 아서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아본 적 없기에 조커에게 다가온 리의 사랑을 운명적 사랑으로 착각한다. 변호사는 그를 교정 시설이 아닌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자 재차 정신병력을 상기시키지만 아서는 리의 마음에 얻기 위해 자신의 범죄를 인정한다. 여성에게 사랑받고 싶은 평범한 남자이길 바랐던 아서, 전편과 달리 두 인물의 내면은 대사가 아닌 음악으로 전달되고 이들의 노래를 따라가다 보면 아름다운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전편이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들춰냈다면 속편에서는 아서의 사랑 이야기를 다뤘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 또한 볼만하다. 23kg을 감량한 호아킨 피닉스의 모습은 전편에서처럼 위태롭고 처량하다. 더욱이 이번 작품에서도 흡입력 있는 연기력으로 스크린을 장악한 호아킨 피닉스는 뮤지컬 영화에 맞게 수준급 탭텐스까지 선보이며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대체불가한 연기력이다. 여기에 레이디 가가는 호아킨 피닉스와 연기 호흡을 맞추며 세계적인 슈퍼 스타답게 뛰어난 가창력과 무대 장악력으로 압도적인 연기력와 비주얼을 선보인다.

바쁘고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아와 페르소나를 구분하기는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페르소나를 선택한 경우 자아를 선택한 대리인을 통해 억눌린 자신의 감정을 풀면서 만족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감정의 전염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조커: 폴리 아 되’는 고독하게 살아온 조커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니게 되면서 자아와 페르소나 사이에 갈등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조명한다. 고독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

양경미 / 전)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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