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같이의 가치’라는 말이 있다. 10여 년 전 한 기업의 이미지 광고에 등장한 말이다. 함께하는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 멋진 카피다. 같이 한다는 것은 공감 혹은 소통을 뜻하고, 이 힘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다. 예술도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을 때 가치를 지닌다. 공감은 시대정신과 보편적 예술 언어에서 나온다.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도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쉬운 미술 언어로 보여주고자 한다. 시즌 10을 맞으면서 공자가 말한 ‘좋은 예술은 반드시 쉬워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하려는 작가를 응원한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예술가들은 미술의 본 바탕을 바꾸어버렸다. 2000여 년 이상 ‘감상’이라는 엔진으로 달려온 미술 열차는 지난 세기부터 ‘생각’이라는 작동 방식이 전혀 다른 엔진을 장착하고 새로운 선로를 개척해왔다. 그 선로의 연장선상에 지금 우리가 보는 미술이 있다.
이 같은 미술의 새로운 원리를 처음 제시한 이는 후기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폴 세잔(1839-1906)이다. 그래서 그를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세잔의 독창적 회화가 등장하면서 서양미술은 그동안 지켜온 ‘현실 세계 재현’의 원리를 버리고 미술만이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현대미술이 어려워졌고,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이다. 즉 ‘감상하는 미술’에서 ‘생각하는 미술’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미술 표현의 핵심적 관심사가 ‘무엇을 그렸느냐’에서 ‘어떻게 만들었느냐’로 옮겨갔다는 얘기다.
무얼 그렸는지 알려면 그림을 보고 내용을 찾아내면 된다. 그러나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표현방식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이런 접근을 통해 작품의 재료와 방법을 찾아내고, 이게 논리적으로 타당한지, 새로운 느낌을 주는지 혹은 미술사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분석해 보는 것이 현대미술에 다가설 수 있는 길이다.
미술이 특정한 이야기(내용)를 포장하는 수단에서 벗어나 포장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다양한 포장술이 등장했다. 여기에는 항상 포장의 방법과 사용한 재료를 설명하는 매뉴얼이 따라붙게 됐다. 이 매뉴얼이 미술 이론이다. 따라서 현대미술은 매뉴얼을 모르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 미술도 이러한 흐름을 받아들였고, 현재 한국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작가들 중 상당 수가 새로운 매뉴얼을 만들어내는 데 열중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젊은 작가들은 더 이상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작품을 그리지’ 않고 ‘만드는’ 것이다.
엘리 정의 회화도 이러한 각도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는 20세기에 새로 개발된 아크릴릭 물감으로 작업을 한다. 아크릴릭 물감이 가진 재료의 특성을 살려서 새로운 시각적 즐거움을 연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는 제빵사가 케이크 제작에 쓰는 비닐 짤주머니를 이용해 다양한 선과 면을 만들고, 이를 화면에 배치하는 하는 방법으로 추상 작업을 한다. 그래서 엘리 정의 회화는 활기찬 색채와 부조 형태로 보이는 물질적 입체감이 특징으로 평가된다.
그는 이러한 추상화를 통해 지루한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삶의 에너지를 찾아내려고 한다. 아크릴릭 물감의 물질감과 우연적 효과에서 오는 활기찬 화면 연출을 통해서.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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