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미래의 공연일까? 현실과 스크린의 경계를 허문 버추얼 아이돌 공연

2024-10-07

집에서 들어도 되는 음악을 굳이 공연장을 찾아가 듣는 이유는 생생한 현장감 때문이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먼 거리에서나마 실제로 보고, 같은 순간 같은 공간 안에 있는 기쁨을 느끼기 위해 비싼 값을 치르고 공연장을 찾는다. 그런데 2D 스크린으로 공연을 즐겨야 하는 ‘버추얼 아이돌’의 공연에서도 그런 현장감을 똑같이 느낄 수 있을까?

5일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블래스트 소속 버추얼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의 <헬로, 아스테룸!> 공연은 그런 차이를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플레이브는 겉보기엔 2D 애니메이션 같은 캐릭터지만, 캐릭터 뒤에는 인공지능(AI)이 아닌 실제 사람이 있다. 춤, 노래 모두 본체인 사람이 하는 것을 실시간 모션 캡처 기술로 구현해 보여준다.

버추얼 공연이라고 해서 무대장치 자체가 독특하진 않았다. 보통 K팝 공연 때 쓰이는 것과 똑같은 3대의 대형 LED 스크린과 주 무대, 1층 객석 중간에 작은 원형 돌출 무대가 있었다. 다만 스크린 자체가 진짜 무대인 만큼 주 무대의 폭은 좁아 보였다.

오후 6시, 공연이 시작되자 스크린이 컴퓨터 로딩 화면처럼 바뀌었다. 플레이브의 세계관은 ‘아스테룸’이라는 행성에 사는 멤버들이 지구에 있는 ‘플리’(팬덤명)들과 소통한다는 것이다. 로딩이 끝나자 갑자기 무언가를 타고 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화면이 이어졌다. 다음 순간, 스크린은 마치 커튼이 열리듯 반으로 갈라졌다. 밤의 호숫가 같은 신비로운 배경에서 등장한 멤버들이 첫 곡 ‘기다릴게’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번 공연이 다른 K팝 공연과 비교해 별다른 이질감이 들지 않았던 이유는 현실에서의 특수효과와 스크린 속 작화가 섬세하게 어우러졌기 때문이었다. 첫 무대는 검은색인 실내체육관 무대에 맞춰 스크린 속 배경의 바닥 색도 어둡게 연출해 공간감을 줬다. 체육관에 잔잔하게 흰 연기를 분사해 무대와 스크린 간 경계선마저 가려버리자, 앞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그림이 아니라 사람처럼 느껴졌다. 체육관에 있는 것과 똑같은 모양의 조명들이 스크린 속 그림에도 등장했는데, 모양뿐 아니라 조명 색깔까지 동일했다. 이 조명이 체육관에서 나오는 것인지, 화면에서 나오는 것인지 잘 구별이 되지 않았다.

스크린과 현실 간 경계는 여러 번 무뎌졌다. 비눗방울을 만들어 내는 특수능력을 가진 예준이 스크린 속에서 비눗방울을 만들면, 체육관 무대에서 실제 비눗방울이 뿜어져 나왔다. 불을 만드는 능력을 가진 은호가 손을 펼치면 무대에서도 불길이 치솟았다.

객석 중간의 원형 돌출무대도 영리하게 활용됐다. 공연 후반쯤, 스크린 속 멤버들이 “우리 이제 앞으로 나가볼게”라고 하자 공연장 전체가 암전됐다. 천장에서 작고 동그란 조명들이 내려와 행성이 궤도를 그리는 것처럼 움직이고, 그 사이로 내려온 360도 스크린이 돌출 무대에 얹어졌다. 스크린의 5개 면에 멤버들이 앉아있는 모습이 등장했다. 작은 큐브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연출이었다.

은호는 “처음 앨범을 5000장 찍자고 했을 때 ‘너무 많이 찍는 것 아닌가요’ 라고 했는데, 이미 이 공연장에 5000분이 넘게 있다”며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편견을 같이 깨부수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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