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흔적 남은 대제국의 중심 도시…

2024-10-16

(51) 잉카 이야기 (4) 제국의 수도 쿠스코

코리칸차·아르마스 광장 등에 남은 서구식 건축물

유럽이 남긴 유물 보며 잉카 역사의 비극 느낄 수 있어

쿠스코 역사 지구의 아르마스 광장 복판에는 잉카제국의 가장 위대했던 황제 파차쿠티 유판키의 동상이 장엄한 모습으로 서 있다. 그러나 광장 주변엔 잉카 역사의 비극의 흔적들이 곳곳에 서려 있다. 대제국 잉카를 단숨에 무너트린 스페인 정복자들이 제국의 중심이었던 이 광장 주변에서 잉카의 흔적들을 허물어내고 그 위에 중세 유럽풍의 기독교 건축들로 채워 넣은 것이다.

아르마스 광장 동편에 인접한 쿠스코 대성당이 대표적이다. 원래는 키스와르칸차라는 잉카의 신전 자리였다. 잉카인들이 숭배했던 창조의 신 비라코차와 태양신 등을 모셨던 신전을 허물고 그 자리에 100여 년 동안 공을 들여 대성당을 지은 것이다. 광장 남쪽에 인접한 라콤파니아 데 헤수스 교회와 산타 카탈리나 수도원은 모두 잉카 황제들이 살았던 궁전을 허물고 유럽인들이 새로 지은 종교 건축물들이다. 12각 돌 석벽이 있던 대주교 본당 건물 역시 잉카 황제들이 살았던 궁전 자리였다.

이렇듯 잉카의 중심을 방문한 쿠스코 여행자들은 12각 돌 같은 잉카 유적은 극히 일부일 뿐이고 대부분은 잉카 정복자들이 재창조해 놓은 유럽인들의 유물들을 만나게 된다. 잉카의 영광이 아닌 잉카 비운의 역사를 만나는 것이다.

아르마스 광장 옆의 잉카 박물관은 심플한 명칭은 물론 쿠스코 대성당 바로 앞이라는 그 위치가 모든 박물관들의 대표격인 느낌을 주지만 대체로 소박한 규모였다. 16세기 스페인 제독의 저택이었던 건물에 도자기, 금 세공품, 무기, 미라 등 다양한 종류의 잉카 유물들이 세세하게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안뜰 한 켠에서 인디오 여인이 직접 직물을 짜는 모습을 시연하며 전통 수공예품을 팔고 있다. 안데스 산골 여느 아낙네의 일상을 훔쳐보는 느낌이었다.

아르마스 광장을 건너 레고시호 공원 앞 시립 현대미술박물관으로 들어섰다. 사각의 건물 안뜰에서 부드러운 물줄기를 뿜어대는 작은 분수대가 제일 먼저 눈길을 끈다. 잉카의 전통 모습을 묘사한 작품들과 현대 사회 일반 풍경을 다룬 미술품들이 3개 전시실에 혼재돼 있다. 예전 쿠스코 시장이었던 이가 현지 예술가들로부터 그림 100점을 후원받아 1995년에 설립됐고 현재 약 300여 점의 근현대 미술품들이 전시돼 있다고 했다.

가르실라소는 16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페루 역사학자이자 연대기 작가이다. 스페인에 정복되기 전과 후 잉카인들의 생활상이나 설화 등에 대한 많은 역사서를 저술했다. 가르실라소의 집, 카사 가르실라소는 잉카 멸망 전과 후 그리고 스페인 식민지 시대를 거쳐가던 시대의 변화를 작가만의 시각으로 보여주는 박물관이다.

고고학 시대실인 1층과 식민지 시대실인 2층으로 구분돼 독특한 스타일의 도자기와 미세 조각품들 그리고 보석으로 만든 제례 장식품 등이 전시돼 있다. 3개 박물관을 둘러본 후 아르마스 광장 주변을 벗어나 쿠스코의 중심 도로에 들어섰다. 옛 잉카제국 시절 황제가 행차했던 아베니다 엘 솔, 일명 ‘태양의 거리’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남동쪽으로 1.2㎞ 뻗어 있다.

제국의 중심 도로였던 이 길 중간쯤 내려오면 왼쪽으로 중요한 명소, 어쩌면 쿠스코에서 제일 중요한 곳이라 할 수 있는 코리칸차를 만난다. 길 왼쪽으로 근사한 뷰를 선사하는 녹색의 사그라도 공원 너머 건물이다. 잉카제국의 가장 중요한 신전이었고 황금으로 도배된 태양의 신전이었던 곳이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황금을 약탈하고 신전 일부를 허물어 산토 도밍고 교회를 세웠기에 현재는 한 공간에 잉카 유적과 스페인 유적들이 공존한다. 17세기와 20세기에 두 번의 큰 지진이 있을 때 스페인이 지은 건물들은 거의 허물어졌으나 잉카 신전 등 제국 시절에 지은 신전 등은 끄떡없었다고 한다. 어쨌든 코리칸차는 잉카 문명과 서구 문명이 묘하게 뒤섞여 있는 현장이다. 쿠스코 관광 지도상에도 1번으로 표기돼 있는 만큼 그 의미가 남다른 명소겠다. 사그라도 공원 지하에 조성된 코리칸차 유적지 박물관은 잉카 고유의 유적들만으로 구성돼 있으면서 미라실, 유골실 등 매우 음산한 분위기였다.

쿠스코 시내에선 두 개의 동상이 유독 인상에 남는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심 아르마스 광장에 하나가 있고 태양의 거리에서 1㎞ 더 내려간 로터리에 또 하나의 동상이 서 있다. 두 개 다 잉카의 9대 왕이자 제국 초대 황제인 파차쿠티 유판키의 것이다. 제국을 통일하고 수도 쿠스코를 건설한, 잉카의 가장 위대한 왕답게 태양을 향해 두 팔을 치켜든 위세가 장엄하기 그지없다. 잃어버린 도시 마추픽추를 건설한 왕이기도 하다.

위대한 황제 파차쿠티가 죽고 나서 증손자 아타우알파 재위 때 잉카는 앞에서 보았듯 피사로가 이끄는 스페인 용병 168명에게 멸망했다. 잉카 트레일을 걷고 마추픽추를 만난 뒤 쿠스코로 돌아와 파차쿠티 황제의 동상을 바라보며 묘한 허무감에 휩싸였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그렇게도 찬란하고 위대했던 문명이 소수의 유럽인들에 의해 너무도 허망하게 짓밟혔다. 그 이후 잉카의 후예들은 현재까지 자손 대대로 핍박받으며 살아온 것이다.

그동안 침략자와 원주민 인디오들 사이에 피가 섞이며 대를 거듭해 왔고 지금의 옛 잉카 땅에는 침략자에 대한 증오 같은 건 없다. 오래전 자신들의 조상들일 뿐이다. 잉카의 땅이었던 지금의 페루 인구 중에는 인디오 외에도 혼혈인 메스티소(Mestizo)와 백인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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