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12월15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국무총리)이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다. 하루 전 우리 국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며 윤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데 따른 것이다. 바이든은 “한 권한대행이 재임하는 동안 한·미 동맹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린치핀’(lynchpin)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어로 린치핀이란 핵심축을 뜻한다. 수레바퀴 가운데 축이 빠지면 수레 전체가 전복되는 것처럼 반드시 필요한 핵심이나 구심점이란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인지 외교적으로는 ‘꼭 함께해야 할 동반자’를 비유할 때 주로 사용된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도 불구하고 한·미 관계는 탄탄하게 유지될 것임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돼 우리 국민 모두가 안도했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통화 후 불과 12일 만인 12월27일 국회에서 한 총리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여러 이유를 갖다 붙이긴 했으나 결국 한 총리나 윤 대통령이나 다 같은 한통속 아니냐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다수 국민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나 다름이 없었다.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가운데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 정상이 트럼프와의 접촉에 사활을 거는 마당에 한국은 미국·통상 전문가인 한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한 총리마저 직무가 정지됐으니 우리 국익에 금이 가게 만든 명백한 자해 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한국이 무정부 상태가 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 총리는 미국 최고의 명문대인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원래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했는데 뿌리는 상공부(현 산업통산자원부)에 내렸다. 1990년대 대통령실에서 통상산업비서관, 산업부에서 통상무역실장을 지낸 점에서 보듯 일찌감치 우리 정부의 통상 전문가로 자리매김 했다. 어디 그뿐인가. 이명박(MB)정부 시절인 2009년 3월∼2012년 2월 주미 한국 대사도 역임했다. MB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국민의힘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한·미 관계가 위기에 처한 점을 지적하며 “한 총리 같은 경험이 있는 분이 복귀해서 대미 외교를 지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내 최고의 통상·미국 전문가인 한 총리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헌법재판소가 24일 재판관 7(기각·각하) 대 1(인용) 의견으로 한 총리 탄핵심판 사건을 기각했다. 이에 따라 한 총리는 88일 만에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복귀했다. 그는 담화문에서 “지금 세계는 트럼프 취임과 함께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새로운 지정학적 대변화와 경제 질서 재편에 직면하고 있다”며 “현실로 닥쳐온 통상 전쟁에서 우리나라의 국익을 확보하는 데 모든 지혜와 역량을 쏟아붓겠다”고 다짐했다. 말만 들어도 든든하기 그지없다. 여야를 향해선 “대한민국이 위기 국면을 헤치고 도약할 수 있도록 초당적 협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국회 300석 중 170석을 지닌 거대 야당 민주당이 그저 한 대행의 당부를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더 이상의 분란을 일으키는 일이 없도록 자중하길 바랄 뿐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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