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건의 쓸모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낡았거나 필요 없어진 것도 떠나보내기 전에 ‘정말 쓸모가 없나?’ 다시 들여다본다. 기후위기를 겪고 있는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고자 하는 이유도 있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버리기 귀찮아서’다. 수리를 즐기는 사람들은 대개 부지런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수리해야 할 물건들을 한구석에 모아두고 외면하는 것 또한 나의 일상이다. 미루기 대장인 나는 습관적으로 ‘버리지 않을 궁리’를 한다. 수리도 버리지 않을 궁리 중 하나다. 망가진 것을 고쳐서, 부품을 갈아서, 닳은 외양을 수선하거나 다듬어서, 때로는 그것의 용도를 바꾸어서 다시 쓰는 것이다. 베란다 식물 선반도 그러한 궁리를 거쳐 새로 태어났다.
이사 날 창문에서 제거한 방범 펜스는 재설치를 하지 않아 베란다에 방치되었다. 이것을 버리려면 집주인의 허락을 얻어야 하고, 버리라고 하면 쓰레기장까지 운반해야 하고, 대형 폐기물 신고를 하고, 요금을 납부하고… 생각할수록 귀찮아서 차라리 보관하기로 하고 겸사겸사 쓸모를 궁리했다. 가로 폭 150㎝, 세로 폭 40㎝, 프레임의 두께는 3㎝. 모양도 크기도 테이블 만들기 딱 좋았다. 펜스 위에 유리를 깔면 성수동 어느 ‘힙한’ 카페에 있을 만한 멋스러운 테이블이 될 것 같았다. 자개농 문짝을 재사용한 테이블은 많지만, 방범 펜스로 테이블 만드는 사람은 나밖에 없겠지? 나는 성급하게 설레었으나, 곧 모순에 부닥쳤다. 원하는 대로라면 펜스 위에 놓을 유리를 맞춤 제작해야 하고, 프레임에 어울리는 다리도 주문해야 한다. 몇년 뒤 펜스를 집주인에게 반납할 때 새로 맞춘 유리와 다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또다시 버리지 않을 궁리를 해야 할까? 시간과 자원을 아끼기는커녕 더 낭비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새로운 자원을 소비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가진 것을 다시 살피는 것이다. 마침 옥상에 쓰지 않는 에어컨 실외기 커버가 있었다. 이전 집에 살 때 방부목으로 만든 것이었다. 해가 잘 드는 창가에 실외기 커버를 내려놓고, 그 위에 방범 펜스를 척 올렸다. 보자마자 운명적으로 쓸모를 깨달았다. ‘이것은 인간이 아니라 식물을 위한 선반이다!’ 펜스는 구멍이 뚫려 있으니 물 빠짐과 통풍에 좋고, 방부목으로 된 다리는 습기에 강한 데다 페트병과 수동 타카만 있으면 간단히 조립할 수 있었다. 구조상 S자 고리를 활용해 걸이 식물도 얼마든지 걸 수 있었다.
밤 기온이 두 자리에 가까워지고 나서야 식물 친구들은 실내에서 베란다로 옮겨졌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이고 물뿌리개로 마른 흙을 적시면서, 봄기운에 돋아난 새싹들을 본다. 그들의 탐스러운 생기에 식물 선반도 크게 기여하고 있을 테다. 자기계발서를 읽고 모닝 페이지를 쓰는 것 외에도 창조성 훈련이 필요하다면, 수시로 ‘버리지 않을 궁리’를 해보자. 자원을 아낄 뿐 아니라 자신도 감탄할 만큼 참신한 아이디어를 종종 만나게 될 것이다.
■모호연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 일상 속 자원순환의 방법을 연구하며, 우산수리팀 ‘호우호우’에서 우산을 고친다. 책 <반려물건> <반려공구>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