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와 당나귀

2025-03-05

한 농부가 늙고 충직한 당나귀를 데리고 농사를 짓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당나귀 사료값이 비쌌기 때문에 사료를 아주 조금 줄이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사료를 줄였는데도 당나귀가 전날과 똑같은 강도의 일을 성실하게 해냈다. 농부는 꾀가 생겨 매일 조금씩 더 줄여보았다. 어느 날 아침 당나귀가 좀 비실비실 해 보였지만 밭의 쟁기질은 그대로 잘 끝내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당나귀가 갑자기 쟁기질을 멈추고 무릎을 꿇더니 거품을 물고 쓰러져 굶주림에 그만 죽고 말았다. 농부는 당나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애도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보고 실망하여 중얼거렸다. ”당나귀가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마침내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일하게 만들 수 있었는데 참 아깝네!”

2022년 미국 구강악안면외과학회지(JOMS)에 소개된 페르시아 우화이다. 이 칼럼에서는 미국 보험회사와 정부에서 제시하는 일부 수술수가가 투입된 의료진의 시간과 노력에 비하여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되어 있어서 의료시스템이 왜곡되고 있으며, 이대로는 의료시스템이 지속될 수가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의료 수가가 비싸기로 잘 알려져 있는 미국에서도 이러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웃 일본은 어떠한가? 2022년 일본 후생노동성의 실태조사에 의하면, 시간외 근무가 연간 960시간 이상 발생하는 경우를 “과로사 기준 이상”이라고 간주하는데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일본 상근의사 중 21%가 “과로사 기준 이상”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5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작년 2024년부터 시간외 근무를 제한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2000년에 25만 7천명 정도였던 일본 의사수가 2022년 34만 2천명으로 약 9만명이 늘어도 이러한 의사의 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에다 도시 이외 지역의 의료인력은 늘지 않았고, 근무 여건도 더 열악하여 의료인력의 지역별 불균형이 심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사수가 2000년에 6만명이었다가 2023년에 16만 6천명정도로 일본보다 약간 더 많은 10만명이 늘어났지만 일본과 비슷하게 대도시에 의사수가 집중되어 중소도시가 의료 취약지역이 되는 현상이 진행되고 있으며 의사 근무여건도 개선이 안 되고 있다. 노인인구는 증가하고 만성질환자가 많아져서 의료비 지출은 갈수록 많아지지만 기존의 제도로는 지역간의 의료격차문제를 포함한 여러가지 난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또한 복합 질환자가 많아진 의료현실에서 의사 혼자서는 한계가 있고 여러 과의 의사들이 함께 모여 있어야 제대로 된 진료가 가능하다. 즉 의료비용이 더 든다. 종합병원의 산부인과 의사를 뽑기 위하여 연봉을 아무리 많이 주겠다고 하여도 분만과 신생아 치료를 함께 도와줄 마취과, 소아과 의사 등의 동료 전문의가 없으면 혼자서는 의료사고나 소송의 위험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분만을 책임질 산부인과 지원자가 있을 리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국가의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그에 따른 막대한 비용이 든다. 지금 우리는 작년 2월부터 상급종합병원의 전공의 사직으로 인한 진료의 공백사태를 1년이상 겪고 있다. 진료원가에 못 미치는 보험수가를 저렴한 전공의 인력으로 그럭저럭 지탱해 나가던 의료시스템이 갑자기 중단되었다. 구강악안면외과도 그 영향권 밖에 있지 않다. 필자가 속한 병원처럼 의과병원에서 구강악안면외과의 전신마취 수술을 진행하는 경우, 마취과 전공의가 빠져나가면서 예년에 비해 거의 50~60% 수준의 전신마취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마저도 언제 줄어들지 모른다.

다른 나라에서 모두 부러워하던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문제점이 의정갈등 사태를 통하여 확실히 드러났다. 지원자가 없는 필수의료는 어떻게 할 것이며 의료의 지역 불균형은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최소한 투입된 원가수준으로 의료수가를 올리는 것이 가장 핵심이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그만큼 국가가 경제적인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해당사자가 너무나 많이 관련되어 있어서 해결이 어렵다. 정부에서는 급증하는 의료수요를 충족하기 위하여 더 많은 의사를 획기적으로 많이 뽑아 놓기만 하면 어쨌든 좀더 힘들고 소송도 많이 걸리는 필수의료로도 누군가 몇 명이라도 더 지원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수가인상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다른 길로 우회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하지만 1년이상 지속된 의정갈등 이후 상급종합병원들은 엄청난 적자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환자 수술 대기시간은 더 길어졌으며, 전공의 복귀는 쉽게 수습될 기미가 없다.

먹는 것은 부족한데 일을 많이 시켜 당나귀가 계속 비실비실하면, 그런 당나귀로 농사를 제대로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교하고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한데 지금은 누가 해결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그런 비실비실한 당나귀들마저 사라졌다. 작년이 최악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작년이 올해보다 그나마 나았다고 회고하는 상황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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