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말레이시아는 왜 한국 스타트업에 관심을 갖나

2024-11-07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약해진 지금이 기회. 그 기회의 시간이 길진 않을 것”

박종석 킬사글로벌 대표의 말입니다. 어딘가 마음이 급해지는 이야기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라는 지정학적 요소 때문에 잠시 벌어진 시장의 틈을 국내 기업들이 얼른 들어가 차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미국보다 중국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고 있단 최근의 연구 결과를 봐서도 중국의 부진이 길지 않을 것이 예고 되고 있으니, 동남아시아를 국외 진출의 목표로 삼은 기업들은 신발끈을 바짝 죄어야겠습니다.

스타트업 대표에게 미래 계획을 물으면, 십중팔구 ‘글로벌 진출’이라 답합니다. 창업자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스타트업에 글로벌 진출이 요구되는 때가 왔습니다. 인구절벽으로 내수는 점점 작아질테고, 기업의 가치 평가를 위해서라도 더 큰 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죠. 그중에서 가장 가까운, 그리고 시장 진출의 허들이 비교적 낮은 곳으로 꼽히는 곳이 동남아시아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흥미로운 컨퍼런스가 하나 열렸는데요. 제목은 ‘말레이시아-코리아, 2024 모빌리티 커넥트’입니다.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디지털 전환을 꾀하고 있고, 그걸 가능하게 해줄 여러 기업의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는데요. 말레이시아 역시 그런 국가 중 하나입니다. 제조 생산기지의 역할을 넘어서, 더 고부가가치를 가져올 수 있는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을 추구한다는 것이죠. 행사는 말레이시아 투자진흥청과 이 나라 자동차 제조회사 페로두아가 열었고요, 킬사글로벌도 공동주최측 중 한 곳입니다.

킬사글로벌이 어떤 회사인지부터 잠깐 소개해야겠군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동남아시아나 중동 등으로 진출하려는 기업을 주로 지원합니다. 스타트업이 다른나라에서 성공하려면 ‘현지화’를 잘해야 한다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요, 그 현지화라는 것이 단순히 그 나라 말을 잘 하는 사람을 뽑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닙니다.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고, 내 상품이나 서비스를 그 정서에 맞게 전환하며, 지속적인 비즈니스를 위한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까지를 모두 포함하죠. 킬사글로벌이 하는 일이, 국외 진출 스타트업과 팀을 이뤄 바로 그 현지화를 해내는 일이라고 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국내 기업들이 왜 동남아시아 시장에 진출해야 하는지, 현지에서는 어떤 기회가 있는지를 들어보기 위해 지난 4일, 공덕동에 위치한 서울창업허브센터에서 박종석 킬사글로벌 대표와 권오숭 킬사글로벌 한국지사장을 만났습니다. 지금 말레이시아가 한국의 기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유도 해야 할 질문 중 하나였습니다.

Part1. 왜 동남아인가

동남아 진출, 꼭 해야 하나? 가면 고생하고, 언제 성공할지도 모르는데

박종석 대표= 동남아를 말하기 전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글로벌로 가야한다는 당위성은 있다. 우리나라 시장은 (인구 수가 줄어들 것이므로) 갈수록 작아질 거다. 스타트업이 대략, 200억원 정도의 기업 가치에 만족한다면 굳이 글로벌 진출을 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투자 유치를 할 때 그 정도 시장에 만족하겠다고 말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일단 ‘글로벌 진출’을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투자를 못 받을 테니까

박종석 대표= 시장에는 다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 중소 규모 기업이 해외나 글로벌로 가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시대로 가고 있다. 솔루션을 사줄 바이어에는 한계가 있고, 정부의 예산이 없어지면 다. 같이 흔들리는 구조다. 위험을 피하고 시장을 키울 수 있는 건 해외 밖에 없다. 그랬을 때 가장 접근 가능한 시장이 어디냐,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하는 동남아시아라고 보는 거다.

다른 시장에 비해 동남아시아가 유리한 이유는?

박종석 대표= 역으로 이렇게 물어보겠다. 동남아시아 말고 어디로 갈 거냐? 미국으로 갈 수 있으면 가라고 한다. 그런데 쉽지 않다. 동남아는 한국과 문화적으로 가까우면서, 한국에 대한 수용력도 높아졌다. 인구 수도 많고. 게다가 동남아시아에 중국의 영향력이 지금 많이 약해졌다. 킬사글로벌이 하는 프로젝트들이 기존에는 중국에서 하던 것들이 많다. 중국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것은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지정학적인 요인이 있는데, 언제까지 그럴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지금 이 시점에, 한국 기업이 동남아시아로 진출한다면 어떤 산업군이 유리하다고 보나?

박종석 대표= 그간 기술쪽을 집중해왔으니, 기술 영역으로 본다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되어 있는 쪽이 유리한 것 같다.

그래서, ‘모빌리티’라는 키워드가 나왔나?

박종석 대표= 그렇다. 현대라고 하는 굉장히 큰 글로벌 기업이 있고, 산업 생태계도 만들어져 있다. 한국은 디지털도 빠르고, 스마트한 기업들, 기존의 자동차 산업을 바꿔주는(Converting) 기업도 많이 나왔다. 이런 곳들이 동남아사이에 맞다. 동남아시아는 전통적인 제조 기반 플랫폼이 많지 않나. 특히, 이번 행사의 주제가 ‘모빌리티 인 말레이시아’였는데, 말레이시아 정부도 기존처럼 국민들을 공장에 취직시키는 것 말고, 보다 스마트한 쪽으로 가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쪽 테크놀로지가 없다는 문제가 있다.

현지화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 보인다. 현지화에서 킬사글로벌의 역할은 어떻게 되나?

권오숭 지사장= 통상 현지화라고 말하면 영어를 잘 한다거나, 디자인 패키징을 현지 문화에 맞춰서 하는 것을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다. 비즈니스 자체가 현지화되어야 한다.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에서 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다 달라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현지화를 한국사람이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현지에서 전문가가 이 문제를 풀어줘야 한다. 그게 킬사글로벌의 기본적인 콘셉트다.

박종석 대표= 킬사글로벌이 내년에 10주년이다.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에 법인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 10년이 걸린 거다. (킬사글로벌이 쌓은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진입 장벽이 높다고 생각한다.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지 않나? 그에 맞는 프로페셔널 워크포스가 붙어줘야 하는데, 단순히 사람을 고용해서 문제가 해결되는게 아니라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이해하고 드라이브를 걸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동남아 진출을 하려고 하는 기업들이 고려해야 할 점이 뭐가 있나?

권오숭 지사장= 대표가 직접 현지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대표의 마음가짐이다. (한국에서) 그냥 보고만 받고 직접 참여 안 할거라고 하면, 저희는 “하지 마시라”고 말한다.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서 사람이 보는 게 달라진다. 결국은 대표가 높은 데서 크게 볼 줄 알아야 의사결정이 올바르게 이뤄진다. 실무자가 와서 이야기 하는 걸로 대표가 의사결정을 내리면 일이 제대로 되기 어렵다.

동남아시아 진출을 많이들 권유하지만, 국내 기업이 동남아에 진출해서 성공했다는 사례는 많이 못 들어봤다. 현지 네트워크 구축하지 않아서일까?

박종석 대표= 개별 기업이 동남아시아에 진출했을 때는, 네트워크 구축 그 자체가 본업은 아니다. 자기 상품을 현지에 맞춰서 빠르게 바꿔 보고 도전하는 것은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의 네트워크 구축을 할 생각은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상품을 사고 파는데만 집중한다.

그랬을때 어떤 문제가 생기나?

권오숭 지사장= 영속적인 비즈니스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갑자기 물건을 들고 들어가서 “이거 좋다, 살래?”라고 말한다면, 한 번은 상품을 팔 수 있지만 일회성의 거래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데 “나한테서 이걸 사면 당신한테 뭐가 좋은지, 우리가 반드시 거래를 해야 하는 사이인지, 앞으로 시너지가 어떤 게 나올 수 있는지” 등을 충분히 설명하고 탐색하는 기간이 주어진다면, 새로운 밸류체인을 만들어갈 수 있다.

반대로, 다른 나라 기업이 동남아시아 현지에서 잘 정착한 사례가 있으면 말해달라

박종석 대표= 여러군데가 있는데, 싱가포르 기업 중에 ‘짐포드(gympod)’ 라는 곳이 킬사글로벌과 계약해 인도네시아에 진출을 했다. 이동식 컨테이너 박스 안에 간이 짐(피트니스 클럽)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것인데, 인도네시아 현지 론칭 후에 지금은 확장 중이다. 한 명이 예약해서 나만 운동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다.

권오숭 지사장= 인절미라는 멘탈 헬스케어 기업도 있다. 싱가포르 국립정신병원과 파일럿 테스트를 마쳤다. 고피자도 성공적으로 현지 진출을 했고(고피자는 현재 싱가포르 내 세번째로 많은 매장을 가진 피자 체인이 됐다), 영화 ‘아바타’를 모티브로 한 ‘가든스 바이 . 더베이’에도 녹조 제거를 하는 로봇 회사가 진출했다. 킬사글로벌의 파트너들이다.

part 2. 말레이시아와 모빌리티

우리 인터뷰 직전에 말레이시아 대사를 만나고 왔다고 들었다. 어떤 이야기들을 나눴나?

박종석 대표= 말레이시아가 전통적인 생산기지였지만, 지금은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저임금 노동력 중심에서 벗어나, 좀 더 생산력 있는 그림을 내다보려 하는데 그걸 할 수 있는 기술이 없다고 이야기 한다. 한국에서 기술을 도와주길 바라고.

권오숭 지사장= 지난주에는 말레이시아의 큰 자동차 회사인 페로두아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 현지에서는 제대로 전기차를 생산하는 곳이 없다. 배터리는 중국에서, 기술은 일본에서 가져오는 식이다. 완성차 회사지만 사실상 조립을 하는 것에 더 가까운 형태다. 그래서 혁신을 필요로 한다. 혁신 기술을 어디서 가져올 것이냐? 그 선택지 중 하나가 한국이다.

박종석 대표= 구체적으로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관심있는 영역은 ‘오토모티브 인더스트리’ 영역이다. 생산 기반시설을 어떻게 자동화하고, 스마트하게 만들어주느냐다. 말레이시아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정부도 2030년까지 모든 오토바이를 전기 모터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그렇지만, 시장 자체는 유럽이나 미국과 비교해 성숙하지 않았다.

전기 오토바이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동남아시아에서는 아주 중요한 전환이지 않나?

권오숭 지사장= 그렇다. 흥미로운 예시가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고 있는 회사도, 오토바이의 전동화를 구현하는 회사다. 내연 오토바이를 전기 오토바이로 바꿔주는 일인데, 이 과정에서 오토바이 드라이버들이 탄소배출권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어떤 회사에서도 아직 오토바이 전동화에 따라 내가 탄소배출권을 얼마만큼 가져갈 수 있는지, 그 기준을 아무도 세팅해놓지 않았다. 그 세팅을 해당 회사와 킬사글로벌이 함께 만들고 있다. 지금 데이터를 확보 중인데, 이게 정리가 되면 이륜 자동차(오토바이) 영역에서 자율적 탄소 규제 시장에 처음 들어가는 셈이 된다. 이 비즈니스로 인도네시아에서 첫 테이프를 끊고, 필리핀과 베트남, 캄보디아 등 총 4개국에 진입하는 것을 논의 중이다.

동남아시아는 이륜차, 삼륜차가 주요 이동수단이니까

권오숭 지사장= (이륜차, 삼륜차가) 엄청 많다. 인도네시아나 베트남에서는 차선도 잘 없으니 사실상 자율주행을 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현실 상황에 맞는 아이템과 비즈니스 모델을 가져가는 것이 중요하다.

킬사글로벌이 기업의 현지 사업을 돕는 걸 넘어서 새로운 사업 모델을 계속해 만들어가는 것 같다

박종석 대표= 킬사글로벌과 함께 하는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진행하다가, 그것이 우리의 사업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스핀오프를 하기도 하고.

권오숭 지사장= 협업하는 모빌리티 기업들이 상당히 많다. 오토노머스에이투지와 같은 자율주행도 있고(중동 사업 진출), 전기 오토바이로 전환하는 곳도 있다. 배터리 성능 검증 솔루션을 가진 곳이나 혹은 B2B 물류 솔루션으로 진입하는 곳도 있고. 다양한 모빌리티 산업군에서, 국가별로 적합한 아이템을 찾아주는 것도 킬사글로벌이 하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모빌리티나 오토모티브 산업 중에서도, 말레이시아에 가장 적합한 영역은 어디일까?

권오숭 지사장= 말레이시아는 자체적으로 차를 만들고 있고 생산도 한다. 따라서, 생산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솔루션에 관심이 깊다. 예를 들어서 공장 자동화도 포함된다. 또, 차량 안에 들어가는 센서나 디스플레이와 관련한 기술, 보안과 안전에 관련한 것들도 충분히 잠재력이 크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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