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수많은 목숨 살렸다"…'백신에 진심' 빌 게이츠, 한국 온 이유 [더 인터뷰]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한국의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 세계는 지금 한국이 필요하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중앙일보와 단독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그는 지난 20~22일 방한해 이재명 대통령, 우원식 국회의장, 김민석 국무총리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을 두루 만났다. 그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게이츠재단은 서울사무소를 열 예정이다. 지난 5월 “거의 전 재산을 20년 안에 모두 내놓겠다”고 했던 그 재단이 서울에도 둥지를 트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그의 관심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에 기대하는 역할은.

“한국의 리더십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 많은 국가가 세계 보건 개발 지원금을 치명적인 수준까지 삭감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은 2018년부터 관련 지원 예산을 두 배로 늘렸다. 이 투자 덕에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 생명을 살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한국의 자원만이 아니다. 지원을 받던 나라에서 지원하는 공여국의 지위를 성취한 최초의 국가로서, 한국이 일궈낸 역사적 경험 역시 소중하다. 한국의 스토리는 한 나라가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는 역량을 구축하는 데 투자하는 게 효과가 있다는 증거다. 세계는 한국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다. 그 경험에서 나온 교훈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그는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에서 중앙일보와 만난 뒤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서도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을 GDP의 0.7%까지 늘려 달라”는 구체적 희망사항을 피력했다. 그는 중앙일보에 “게이츠재단은 지난 20년 대비 앞으로 20년 지원금 예산 규모를 두 배로 늘렸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 분야, 특히 백신에 대규모 기부를 해 왔다. 왜 이렇게까지 백신에 진심인가.

“세네갈 전 보건부 장관이 해줬던 이야기로 답을 시작하고 싶다. 한때 세네갈에선 아이가 태어나도 다섯 살이 되기 전까진 없는 셈 쳤다. 홍역 탓에 다섯 돌을 넘기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홍역 병동엔 고통받는 아이들이 가득했다. 일부는 뇌 손상을 입었고, 일부는 영영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그러다 백신 접종 지원을 받게 된 뒤 극적 반전이 일어났다. 오늘날 홍역 사례는 급감했고, 수많은 홍역 병동이 문을 닫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통계가 있는데, 전체 어린이 사망자 수가 2000년엔 920만명에서 2024년엔 440만명으로 급감했다는 것이다. 이 획기적 성과의 이유는 단 하나, 백신이다. 백신을 개발하고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낮추고, 가비(GAVI·세계백신면역연합) 등의 기관을 통해 백신이 있어야 하는 모든 이에게 효율적으로 공급하도록 지원하는 게 게이츠재단의 목표다.”

백신에 대규모 기부, 이유는

백신에 어린이 사망자 수 절반 줄어

세계 백신 문턱 낮추는 게 재단 목표

재산 기부도 질병·빈곤 해결 위한 것

백신 회의론자들이 여전히 많다.

“백신 접종이 어려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백신의 안정성은 과학적으로 명확하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확언한다. 백신을 다루는 기준은 최고 수준이며, 끊임없이 검증되고 모니터링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백신 불평등이 이슈가 됐다. 이는 해결이 되고 있는가? 가까운 미래에 또 다른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데.

“좋은 소식은 백신 불평등에 대처하기 위한 검증되고 효과적인 전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2000년 게이츠재단은 백신 문턱을 낮추고 전 세계 어린이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여러 파트너와 협력해 국가와 조직의 연합체를 구성했다. 그게 바로 가비(GAVI)다. 가비는 백신의 비용을 절반으로 줄였고, 보건 시스템을 강화하도록 도왔다.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덕분에 지금까지 11억 명의 아이들이 백신을 접종할 수 있었고, 약 1900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 그런데 이제 여러 나라가 가비에 대한 지원을 끊고 있다. 지금은 재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백신 불평등을 해결하고 미래의 비상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다.”

게이츠가 한국의 일방적 지원만 요구한 건 아니다. 그는 한국 기업과 연구기관 등을 오랫동안 지원했다. 게이츠재단이 2013년부터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과 학계에 지원한 금액은 4억1180억 달러(약 5801억원)에 달한다.

한국 기업·학계를 지원해 왔는데.

“보건 분야에서 한국 과학자들이 수많은 혁신을 이뤄온 덕에 (백신의) 품질은 더 높아지고 비용은 낮아졌다. 게이츠재단은 이런 노력을 뒷받침할 수 있어서 신난다(thrilled). 한국에 있는 세계 최초 PPP(public-private partnership, 공공과 민간이 협력해 개발도상국을 지원) 기관인 국제보건기술연구기금은 세계 보건 혁신을 위한 연구개발(R&D)을 수행한다. 유바이오로직스·SK바이오사이언스·LG화학과 같은 기업도 게이츠재단과 파트너십을 맺고 백신 개발에 힘쓰고 있다. 가비가 공급하는 백신의 약 11%를 한국의 기업이 제조한다. 삼성전자 같은 기업과도 보건 혁신을 위해 협력한다. 신형 진단 프로그램 개발부터 화장실 시스템 개선까지, 전 세계 저소득층의 위생을 개선할 수 있는 모든 분야의 보건 혁신을 위해 노력한다. 내가 언급한 건 한국이 일궈낸 흥미진진한 혁신 사례의 일부일 뿐이다. 한국이 이렇게 보건의료 글로벌 리더로 발전하면, 결국 한국 경제의 추가 성장도 촉진하게 될 것이다.”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는 선언은 왜, 어떻게 했나.

“현재 진행 중인 혁신이 완성되면 인류는 지난 수십 년간 이뤘던 성장에 비견하는, 혹은 그걸 뛰어넘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 사실상 전 재산인 2000억 달러(약 277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내놓겠다고 결심했다. 산모와 아이들의 사망을 막고, 전염병과 싸우며, 사람들이 빈곤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야심 찬 목표지만 우리(the world)는 분명히 달성할 수 있다. 그러기로 선택하기만 한다면.”

화제를 돌려 보자. 가장 좋아하는 인공지능(AI) 도구는 뭔가? 가장 최근 AI에 무슨 질문을 했나.

“나는 다양한 분야의 매우 똑똑한 사람들을 운 좋게 많이 알고 있다. 예전에는 그들에게 질문을 많이 던져 괴롭혔다. 이제는 최신 물리학에 대한 질문 같은 걸 꽤 자주(more often than not) 챗GPT에 던진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AI가 내게 해 준 답을 그대로 복사해 나의 똑똑한 물리학자 친구에게 보내 그 답이 정확한지를 확인한다. 대개의 경우 꽤 정확하고, 매번 더 정확해진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AI는 따로 있다.”

한국 보건개발 투자 활발, 세계 주목

가비공급 백신 11%, 한국기업서 제조

도움받던 나라에서 도움주는 나라로

한국 성장 스토리, 전세계 교훈될 것

뭔가.

“필요한 지식에 접근할 방법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에 필요한 지식을 제공하는 AI를 좋아한다. 인도 시골에서 소규모로 농사를 짓는 농부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온라인에는 농사법에 대한 정보가 매우 많지만, 대부분 그가 읽을 수 없는 언어로 돼 있다. 게이츠재단은 지금 저사양 스마트폰에서도 현지 언어로 세계 최고의 농업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하고 있다. 농사법뿐 아니라 날씨 패턴, 가격 변동 등 모든 최신 정보를 제공하려고 한다. 이는 변화하는 기후환경에서 농부들이 더 성공적으로 인류를 먹여 살릴 방법을 탐색하는 데 놀라운 효율성을 발휘할 것이다. 이런 사례는 향후 몇 년간 AI가 가져올 변화의 하나일 뿐이다. 이러한 도구를 가장 혜택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투자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