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10월의 산은, 말해서 뭐합니까마는, 탐스럽습니다. 지난해 10월만 해도 우리나라 인구의 10분의 1인 513만 명(국립공원기본통계)이 찾았으니까요. 여름이 남긴 물과 풀이 있고, 가을이 가져온 햇살과 바람이 있습니다. 요즘 북한산 백운대에는 기현상이 있습니다. 안산에서 온 이동현(27)씨가 “안산 다문화거리에 온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외국인이 더 많습니다. 외국인의 시선도 있습니다. “산에서 술 마시면 안 되는데, 올해도 여전하네요.” 유학 3년 차 한나(22·폴란드)의 말입니다. 국립공원에서의 음주 단속 건수가 2022년 328건에서 지난해 373건으로 오히려 늘었으니 한나의 말이 맞습니다.
법으로 막은 국립공원 음주 여전
도토리 채취, 반려견 동반도 금지
음주 산행의 뿌리는 깊습니다. 『유소백산록』에서 퇴계 이황은 ‘(소백산) 국망봉 정상에서 술 석 잔에 시 일곱 수를 쓰는데 해가 이미 기울었다’고 합니다. 480여 년 지난 지금으로 옮기면 정상주를 했다는 고백 아닌 고백. 과태료 10만원이 가능할까요. 퇴계 선생이 “마시는 걸 봤냐”라면 어쩌죠.
음주 산행의 단속 근거는 자연공원법 27조입니다. ‘대피소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소·시설에서의 음주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 시행령은 ‘탐방로, 산의 정상 지점 등 공원관리청이 지정하는 장소·시설’로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소백산이 국립공원이고, 음주를 금한 정상부이니 장소적 여건은 충족하지만, 행위적 요건이 애매합니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현장에서 음주 장면(행위)을 포착하지 않으면 단속하기가 마땅치 않다”고 합니다. 2년 전, 유력 정치인이 강화도 마니산에서 음주 장면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하지만 마니산은 자연공원법이 적용되는 자연공원이 아니기 때문에 과태료는 비켜나갔습니다.
애초에 이 법이 시행된 때인 2018년 3월에도 논란이 있었습니다. 오랜 등산 문화를 법 하나로 바꾼다, 국민 의견은 물어봤느냐, 한 잔만 하는 건데 과잉 규제다, 음주 산행이 음성화될 것이다….
국립공원에서의 흡연 단속 건수가 2022년 219건에서 지난해 43건으로 급감한 것과 달리 음주는 요지부동입니다. 단속 건수가 행위의 증감과 꼭 비례하지는 않습니다만, 대체 왜 그럴까요. 흡연 적발 시 과태료가 세기는 합니다. 최고 200만원입니다. “우리나라가 술에 유난히 관대한 것도 한몫한다”고 한 중독치료 전문가가 말을 보탰습니다. 하지만 음주하는 ‘현장’, 국립·도립·군립공원 등 ‘자연공원’, 정상부·대피소 등 ‘지정한 곳’. 이 세 가지 중 하나만 피하면 ‘산에서 음주가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틈새’도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 북한산국립공원에서 막걸리 통을 배낭 밖에 꽂은 채(심증은 가지만 현장은 아님) 중성문을 지나(지정된 곳이 아님) 하산하는 남성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연공원법 27조와 그 시행령을 모르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너무 잘 알고 있었을까요.
백운대의 이동현씨처럼 어쩌다 등산하는 이들은 “산에 그런 법이 있었어요?”라고 반문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법’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알아도 당국에서 기대하는 계도 효과는 클 겁니다. 음주로 인한 사고는 정상부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법의 틈새도 메워야 할 것도 같습니다.
북한산성탐방지원소 앞. 한 부부가 열심히 도토리를 줍고 있었습니다. 등산객 한 명이 “(국립공원에서) 산나물·열매 채취하다가 징역살이해요”라며 제지했습니다. 부부는 “그런 법이 있어요?”라더니 도토리를 버리고 갔습니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및 200만원의 과태료’라는 말을 듣고요. 반려동물을 동반하면 안 되고, 그늘막을 쳐서는 안 되며, 스피커를 틀면 안 되고, 혐오감을 일으켜서는 안 되고…. “그런 법이 있었어요?”라고 반문할만한 ‘법’이 산에 꽤 있습니다. 10월, 산의 시간이 왔습니다. 아울러, 금지행위 단속 강화의 시간도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