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플러스가 4일 대형마트 업계 사상 초유의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한 것은 지난 10여 년간 업계의 발목을 잡아온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의 폐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골목상권을 보호하겠다고 제정한 유통법에 대형마트들의 손발이 묶이면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유통시장이 판도가 온라인 플랫폼으로 재편되는 상황에 적시 대응을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기 둔화까지 가세하면서 홈플러스가 결국 매각도, 성장도 어려워지며 기업회생을 신청한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2012년 제정된 유통법의 주요 골자는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의무휴업일을 지정하고 신규출점 및 영업시간을 제한해 전통시장 등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대형마트의 영업을 제한하면 소비자들이 대신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을 찾을 것이라는 발상에서였다. 하지만 법 제정 이후 온라인 플랫폼의 성장 및 스마트폰 발전으로 온라인 쇼핑이 급증했고 2019년 발생한 코로나19는 이 같은 추세에 기름을 부었다. 대형마트 대신 소비자들이 찾은 것은 전통시장이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이었던 것이다.
유통시장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재편돼 법 취지도 무색해진 이후에도 대형마트들은 주말 휴무로 오프라인 경쟁력을 상실했고, 영업시간 제한으로 새벽배송 등도 불가능해 쿠팡, 네이버 등 e커머스와의 격차는 갈수록 커졌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유통법을 규제개혁 1호로 유통법을 꼽았지만 계엄·탄핵정국에 법 개정도 요원한 상태다.
서울 서초구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조례를 개정해 대형마트 월 2회 ‘주말 의무 휴업’을 ‘평일 휴업’으로 바꾸고 있지만 상황을 반전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대형마트의 의무 휴업일을 주말에서 평일로 바꿨더니 오히려 인근 골목상권의 주말 매출이 3% 넘게 증가하는 등 유통법의 ‘모순’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최근에는 소상공인이 먼저 발 벗고 대형마트의 주말 영업을 허용하게 해달라는 목소리를 낼 정도다.
이런 가운데 한때 오프라인 유통업계 매출 1위였던 대형마트는 이제 백화점, 편의점에도 밀리는 상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형마트의 지난해 판매액 잠정치는 37조 965억 원으로 2020년 대비 9.8% 증가한 반면 온라인쇼핑을 포함한 무점포 소매의 판매액은 같은 기간 31.6% 증가한 137조 6926억 원을 기록했다. 이미 무점포 업태의 판매액이 대형마트의 3배 이상 앞선다.
이처럼 시장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규제의 대가는 고스란히 근로자가 지게 됐다. 홈플러스를 비롯해 이마트 등 대형 마트들이 점포수를 줄이면서 희망퇴직 등을 통해 고용 감축에 나섰기 때문이다. 홈플러스의 경우만 봐도 최근 10년 새 임직원수는 2만 5000명에서 1만 9500명으로 22% 가량 감소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통법으로 대형마트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며 “중국 e커머스까지 본격적으로 유입되는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