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인 29일, 무안공항으로 향하는 길에 유가족들을 떠올렸다. 재난 뒤에는 때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추가 희생을 막는 일, 그 하나가 전부일 때가 있다. 그래서 사고 직후 유가족과 소방·경찰 등 현장 인력의 트라우마가 또 다른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트라우마 코호트’를 만들고 위험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려 했다. 그런데 1년 사이에 추가로 세상을 떠난 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마음이 내려앉았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슬프고 죄송스러운 마음에 유가족을 제대로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 감정은 개인의 죄책감으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생명을 지키겠다고 말하지만 재난의 현실은 ‘죽음의 여운’이 남긴 관계들이 생을 이어가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 현장 대응자들의 몸, 매일을 버티는 마음이야말로 재난의 긴 꼬리다. 안전의 정의는 사고 순간을 통제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그 긴 꼬리에서 또 다른 희생이 생기지 않도록 붙드는 능력까지 포함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제도는 여전히 ‘사건이 끝나면 끝난 것’처럼 움직인다. 큰 사고가 나면 대책위가 꾸려지고 보고서가 쌓이지만 당사자들의 삶은 수년간 이어지는 반면 지원은 몇 달로 끝나기 일쑤다. 현장 대응 인력의 외상 후 스트레스와 우울, 알코올 의존, 자살 위험은 ‘개인의 문제’로 밀려난다. 국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애도의 언어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을 끝까지 책임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 구조의 출발점은 참여다. 이태원 참사 이후 청문회에서 재난 전문가로 증언했을 때도 유가족과 생존자, 그리고 현장을 지킨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충분히 중심에 서지 못했다. ‘조사’가 존재하더라도 당사자가 배제되면 진실은 부분만 드러나고 대책은 현실에서 미끄러진다. 재난 피해자와 생존자, 현장 인력이 조사와 정책 설계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법과 제도로 보장해야 한다. 그들의 경험은 감정이 아니라 다음 재난을 막는 지식이다.
다중 복합 위기의 시대에 대형 재난의 가능성은 높아졌지만 우리의 재난 관리 체계는 여전히 사후 수습 중심이다. 재난은 단일 원인이 아니라 조건들의 결합으로 발생한다. 이제 안전을 예측의 영역으로 옮겨야 한다. 항공·교통·기상·시설·인력·운영 데이터를 통합해 위험신호를 조기에 포착하고 복합 조건이 결합될 때의 메가리스크를 시나리오로 분석·훈련하는 상설 체계가 필요하다. 인공지능(AI)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다. 다만 기술 도입이 면죄부가 되지 않도록 데이터·기준·책임 주체를 명확히 한 거버넌스가 함께 서야 한다. 경보가 울렸는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은 예측이 아니라 소음이다.
재난 이후의 회복도 ‘프로그램’이 아니라 ‘인프라’가 돼야 한다. 트라우마 코호트는 선언이 아니라 장기 추적과 개입, 재정·인력·연계가 갖춰진 공공 시스템이어야 한다. 유가족과 생존자, 현장 대응 인력에게는 심리치료의 접근권만이 아니라 휴식과 복귀, 가족 돌봄과 고용 보호까지 포함한 ‘회복의 권리’가 필요하다. 2차 희생을 막는 일은 의료의 과제가 아니라 국가의 안전 과제다. 1주기의 추모가 다음 1년의 예방으로 이어져야 한다. 우리는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말해왔다. 이제 그 말이 제도가 되도록 안전을 수습의 기술에서 예측의 체계로, 그리고 생명의 보호에서 죽음의 여운까지 책임지는 사회로 옮겨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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