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불로장생(不老長生)과 이시진(李時珍)

2024-10-25

한약재 감초(甘草)는 단 맛이 난다. 성질은 평(平)하고, 독성(毒性)도 없다. 하지만 생으로 쓰는 경우와 구운 후 처방할 때를 구별해야 한다. ‘만약 속을 보(補)하려는 용도라면 구운 후 처방하고, 화(火)를 치유하려는 경우라면 굽지 않고 그대로 처방해야 한다.’ 이시진(李時珍. 1518-1593)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이런 기록들이 나온다.

이번 사자성어는 불로장생(不老長生. 아니 불, 늙을 로, 긴 장, 살 생)이다. 앞의 두 글자 ‘불로’는 ‘늙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장생’은 ‘수명이 길다’라는 의미다. 두 부분이 합쳐져 ‘신체적으로 젊음을 유지하며 오래오래 산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이시진은 명(明)나라 말기에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이었다. 대대로 환자 치료를 생업으로 삼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친도 의원(醫員)이었다. 부친의 바램에 따라 과거에 응시했지만 팔고문(八股文) 규칙을 위배하는 문장을 제출해 계속 낙방했다. 그는 부친에게 자신은 고루한 팔고문이 너무 싫다고 속내를 밝힌다. 팔고문은 중국 명·청 시대 과거시험의 답안에 요구되던 획일화된 문체다.

부친을 설득하고 가업을 이은 이시진은 찾아오는 환자를 치유하는 소극적 진료에 만족하지 않았다. 스승을 찾아 멀리까지 여행했고, 의학 서적을 두루 섭렵한 후 실제 효능과 대조하며 오류를 수정했다.

마침내 그는 35세에 자신이 집중해야 할 소명 하나를 자각한다. 권위있는 기존 의학 서적들마저 오류가 적지 않음을 발견한 것이 계기였다. 오류를 바로잡아 집대성할 필요를 강하게 느낀 것이다. 이후 27년이 빠르게 흘렀다. 35세부터 61세까지 그는 시간과 열정의 대부분을 오롯이 ‘본초강목’ 집필에 쏟았다. 애초 품었던 원대한 포부를 뛰어넘는 큰 성과를 남기고 향년 75세로 생을 마감했다.

‘본초강목’ 제목에 나오는 ‘강(綱)’은 약재 명칭을, ‘목(目)’은 약재 분류를 의미한다. 일목요연한 집필을 위해 그가 알고리즘까지 치열하게 고민했음을 느낄 수 있다. 저서에 수록된 약재 종류는 무려 1,892종이다. 많은 그림과 11,096개 처방이 함께 실려 있다. 심지어 민간에 떠돌던 처방까지도 이 방대한 저작에 포함시켰다.

이시진이 이 책을 통해 수정한 오류들 가운데 사회의 고질적인 악습과 관련된 것도 적지 않았다. 인간은 대체로 ‘불로장생’이라는 허망한 꿈에 집착한다. 이 헛된 욕망에 기대거나 부추기는 업종도 당연히 존재한다. 이시진이 집필과 진료를 겸하며 치열하게 활동하던 시대엔 소위 도사(道士)로 호칭되는 이들이 인체에 해로운 것을 알면서도 수은과 납을 섞어 만든 단약(丹藥)을 불로장생의 신비한 약이라며 현혹했다.

하루는 이시진이 광부의 중독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납 광산을 방문했다. 마침 인근에 사는 도사가 납 구입을 위해 들렀다가 이시진과 딱 마주쳤다. “단약을 만들어 무지한 백성들에게 파는 행위는 물욕에 눈이 어두워 인명을 해치는 것과 같습니다.” 이시진의 따끔한 일침에 도사가 응수한다. “떠돌이 의사 따위가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대역무도한 말은 삼가는 것이 네 신상에도 이로울 것이다.” 도사가 갑자기 대역죄를 언급하자 이시진은 내심 크게 놀랐다.

곁에 있던 제자가 이시진을 대신해 따졌다. “스승님께서는 의원의 양심과 호의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도사님은 어찌 그렇게 험한 말을 하고 그러십니까?” 도사도 그제서야 목소리를 낮추어 설명했다. “나도 호의에서 말한 것이다. 황제께서 지금 ‘불로장생’의 단약을 찾고 계시는데, 네 스승이 저런 말을 하고 다니면 목숨까지 위태로울 수 있단 말이다.” 여하튼 고향에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시진은 가정제(嘉靖帝)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단약에 의존하다가 수명이 단축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시진의 이 일화가 있고 벌써 450년도 더 흘렀다. 최근 과학의 반대말이 정치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오간다. 정치 불신과 냉소가 ‘불로장생’하며 세력을 떨치면 공동체의 미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시진이라면 이런 농담이나 단약이 아닌, 바른 처방전과 감초 섞인 쓴 약을 건네지 않았을까 싶다.

홍장호 (주)황씨홍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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