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사 될 것인가' 이런 공부, 본과 수업에는 없는 이유 [닥터로드]

2024-10-25

서울대 의대생은 의예과 1학년부터 본과 4학년까지 매년 전공 필수 과목인 ‘인간·사회·의료’ 강의를 듣는다. 강의는 의료의 공공성,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 의료 제도 등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다.

수업 운영을 맡은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사회가 보는 의사, 지성인으로서 의사의 역할 등 다양한 의사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환기시키기 위해 다양한 인문사회 강의를 통합한 수업”이라며 “이태원 참사 등 사회와 연관된 다양한 의료계 이슈를 다룰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의과대학에도 의대생의 기초 소양을 키우기 위한 인문사회의학 교육과정이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 의대에선 이런 수업을 편성하기조차 쉽지 않은 데다 특정 학년에 몰려있어 실질적인 교육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저학년에 집중 편성된 인문사회의학 수업

이승희 서울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가 전국 의예과 29개교·의학과(본과) 34개교의 커리큘럼(교육과정)을 조사한 결과, ‘인문사회의학’ 과정으로 총 532개 수업(2022년 기준)이 개설됐다. 인문사회의학이란 인간의 질병 및 건강을 심리·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다루는 학문 분야다.

의대 강의로 보면 ▶언어 ▶역사 ▶예술 ▶윤리 ▶읽기·쓰기·토론부터 ▶의사(史)학 ▶의철학 ▶임상심리학 등 의학적 지식 외 분야를 다루는 수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예과는 2년간 6.3개, 본과는 4년간 10.2개의 인문사회의학 수업이 편성됐다. 학년 당 2~3개꼴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인문사회의학 수업이 저학년에 집중적으로 편성돼 있다는 것이다. 읽기·쓰기·토론이나 국제의료(본과 1학년), 역사(본과 2학년) 등 특정 학년에만 개설된 수업도 있었다.

이 교수는 “많은 의대가 의예과 내 교양과정으로 인문사회의학 관련 내용을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의학과(본과)에서는 인문사회의학 교육과정이 저학년에 주로 편성되어있고, 의료법 등 국가고시 관련 과목이 고학년에 편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박규미 중앙대 커리큘럼혁신센터 교수 연구팀은 ‘의과대학 통합 6년제 학제 개편에 대한 인식 연구’에서 “현 교육과정에서 의사로서 사명감, 헌신, 생명존중 등 기본 소양 교육이 이루어지고는 있으나 대부분 예과 2년에 편중되어 있으며 의학과 진급 후에는 충분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과 땐 노느라, 본과 땐 공부하느라 깊은 사고 못 해”

의대 관계자들은 전공 수업 일정이 빡빡하다 보니 기초 소양 교육을 편성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유성호 교수도 “수업을 도입할 당시 의대 주요 과목을 빼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교수들도 처음엔 난색을 표했다”고 했다.

의대생들 사이에서 기초 소양 과목에 대한 학습 동기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승희 교수는 “의대마다 교육과정을 구성, 편성할 인력이 부족한 데다 수업들도 이론 위주로 이뤄지다 보니 실효성이 없다는 학생 평가가 있었다”고 했다.

예과와 본과를 6년제로 통합하자는 주장도 있다. 6년 동안 실습, 이론, 소양 수업을 꾸준히 편성하는 등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운영하자는 취지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는 지난 2월 각 대학이 의대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공포했다. 예과 2년·본과 4년으로 나눌 필요 없이 대학이 알아서 6년 과정을 운영하라는 것이다.

비수도권 사립대 의대 교수는 “의예과 때는 노느라 정신이 없고, 본과 올라가면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다 보니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앞으로 어떤 의사가 될지 깊이 있게 사고를 못 한다”며 “통합 6년제로 다양한 수업 구성이 늘어나면 필수 의료 분야나 의과학 분야에 진출하는 졸업생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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