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오언이 잔반을 보았더라면

2025-10-22

몸이 몹시 아팠다. 중국의 묘엽(妙叶) 스님은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첫 항에서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 병고로 양약을 삼으라” 하셨지만, 속인에게는 그게 쉽지 않다. 내 병실의 간병사는 70대 여성인데 얼굴에 풍상이 가득하다. 일급이 13만원이면 그럭저럭 살만하겠지만, 쉬는 날 빼고, 간병 사고 보험료, 조합비, 식비를 제외하면 손주를 키워야 하는 몸으로 그리 넉넉하지 않다.

그런데 그 여인이 생활비를 아끼는 방법이 기구하다. 식비를 줄이는 것이다. 식대는 한 끼에 7000~1만원이니 벅차다. 나는 소식하는 편이어서 밥반찬을 많이 남기는데, 그는 내가 남긴 것을 섞어 국밥인지 비빔밥인지도 모를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다.

문득 영국의 자선사업가 로버트 오언(1771~1858·사진)이 생각난다. 우체국장의 아들이니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빈민에 대한 연민이 많았다. 중년에 방직업으로 대성한 오언은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인구 5000명의 이상촌을 건설하였으나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기회의 나라라는 자본주의 미국으로 건너가 새 이상촌을 세웠다. 그러나 이번에도 실패했다. 민중들은 ‘갈채하면서 따라주지 않았다.’ 돈이란 움켜쥐는 것(shaping)이지 나누어 갖는 것(sharing)이 아니라는 맛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더불어 사는 것이 불편했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오언은 낙심 속에 심령술사가 되어 삶을 마쳤다.

오언은 회고록을 남겼는데, 회한이 가득하다. 결론인즉, “가난은 자선, 곧 나눔으로 구제되지 않더라.” 자선가 토빗에게 필부(匹婦)가 묻는다. “그래서 당신의 자선이 그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소?”(『구약성경』 토빗기 3: 10) 병상에서 바라본 여인의 얼굴에 그의 말이 자꾸 어른거린다. “큰 부자는 하늘이 내지만 작은 부자는 부지런함밖에 없다(大富在天 小富在勤).” (사마천)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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