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은 지난밤 내린 비로 축축해진 아궁이를 말려보겠다고 불을 넣었다. 사랑방 아궁이가 타오르니 아직은 그 열기가 덥기만 하다. 하지만 긴 여름 끝에 찾아온 아침저녁의 찬 기운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갑다. 이제 정원에도 가을이 감돈다. 많은 사람이 가을부터는 정원 일이 부쩍 줄어들지 않느냐고 묻지만 그렇지 않다. 정원사들은 계절의 시작을 가을로 보곤 한다. 가을·겨울·봄·여름으로 순서를 매기면 정원의 일이 어느 정도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가을에 가장 중요한 정원 일은 지친 식물들의 잎과 줄기를 쳐주는 가지치기다. 단풍이 드는 식물들은 잎을 남겨두면 찬란한 가을의 색을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레에 먹히고, 강렬한 태양 빛과 열기에 손상된 잎과 가지는 다듬고 잘라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가을 정원의 가장 큰 즐거움은 역시 여름 내내 식물들이 살찌워낸 열매 혹은 씨앗을 발견할 때다. 씨앗을 맺은 식물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씨앗이 멀리 날아가도록 힘쓴다. 이 씨앗의 이동이 바로 식물의 시작이니 가을을 가드닝의 시작으로 보는 셈이다.
과학적으론 씨앗을 심는 가장 좋은 시기는 가을과 봄이다. 그런데 이건 식물의 특징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해를 거듭해 겨울을 나는 다년생 식물은 가을에 씨를 뿌리는 것이 좋다. 아직은 여름의 따뜻한 기운이 땅에 남아 있을 때 뿌리를 내리고, 대신 지상의 공기는 차가워져 경쟁자인 다른 식물들의 기운이 떨어지니 새롭게 태어날 씨앗에게는 참 좋은 조건이 된다. 그러나 1년생 식물은 가을보다는 봄이 더 유리하다. 겨울 추위를 견디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봄부터 싹을 틔워 빠르고 신속하게 성장을 하는 게 좋기 때문이다. 갈수록 뜨거워지고 길어지는 여름은 이제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잊지 않고 돌아와 주는 높고 푸르러지는 하늘에 감사할 뿐이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