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지난해부터 ‘북한 가족 송금’ 탈북민들 수사
“인도적 지원은 면책해야” 지적에도 재판은 계속
[주간경향]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통일 독트린’이라는 남북통일 구상을 발표했다. 구체적 방법으로는 ‘북한 주민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인도적 지원’,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의 역할을 통일 역량에 반영’을 제시했다. 통일부는 통일 독트린에 맞춰 내년도 예산을 편성했다. 북한 인권 개선 사업은 올해의 2배인 124억원, 북한인권센터 건립에는 106억원을 책정했다. 탈북민 정착기본금은 1인당 1000만원에서 1500만원으로 늘렸다.
그런데 최근 기자가 만난 한 탈북민은 “윤석열 정부가 탈북민, 북한 인권을 위해 무슨 정책을 편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오히려 “정부는 탈북민을 탄압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이 이전 정부에서 수사하지 않았던 ‘북한 가족 송금’을 지난해부터 갑자기 수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탈북민들이 가난에 시달리는 북한 가족을 돕기 위해 돈을 보내는 ‘북한 가족 송금’을 단순히 형식적 법으로 재단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국회 등에서 나왔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지난 10월 1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제기돼 수사하지 않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러 탈북민이 이미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설 수밖에 없는 탈북민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북한의 ‘북’ 자만 떠올려도 눈물이 나요. 북한에 있는 가족들 때문에요. 늙은 부모가 울면서 도와달라고 영상을 보내오면 일이 손에 잡히겠어요? 돈을 안 보내면 밤잠을 못 자요. 여기 사람들은 자기 부모 다 같은 땅에 살고 굶지도 않잖아요. 여기서 웃고 떠들고 살아도 가슴이 타서 재가 남아요, 재가.” 지난 10월 21일 기자와 만난 50대 탈북민 여성 A씨가 말했다. A씨는 2007년 한국에 들어와 18년째 살고 있는데 지난해 7월 갑자기 경찰에서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수사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탈북민들은 한국에 들어오면 브로커부터 찾는다고 한다. 먹고살기 어려운 북한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고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을 주고받고 싶지만 정식 경로가 없어 중국, 북한의 브로커들이 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은 A씨가 외국환 업무 등록을 하지 않은 채 탈북민들 돈을 받아 브로커 쪽 계좌로 보내준 게 법 위반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월 14일 ‘제1회 북한이탈주민의 날 기념식’에서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으로,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기본적 책무”라고 말했다. 검찰도 이 논리를 내세워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에서 문재인 정부 인사들을 수사했다. 그러나 경찰은 한국 국민인 탈북민이 북한 주민인 가족에게 돈을 보낸 것은 ‘외국환 거래’라 미등록이면 처벌해야 한다며 수사에 나섰다. A씨는 벌금 1000만원 약식명령을 받자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북한에 살던 어린 시절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꿨던 A씨는 ‘출신성분’ 때문에 모두 포기했다고 했다. A씨의 친척이 해방 이후 남쪽으로 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반동분자라는 이유로 A씨 가족도 북한에서 반동분자로 분류됐다. 가난과 탄압을 피할 수 없었다. 탈북 후 한국으로 온 A씨는 밤낮없이 식당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모은 돈으로 자녀를 비롯해 다른 가족 몇 명을 한국으로 데려왔고, 북한에 남은 부모와 가족들에게는 브로커를 통해 돈을 보냈다. 그러면서 중간에서 다른 탈북민의 돈을 전달해주는 일도 하게 됐다.
송금 과정엔 위험이 뒤따르지만 A씨는 탈북민들이 송금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감자나 콩을 심어도 싹이 나기도 전에 다 파먹으니까 나질 않는 거예요. 농사를 지으면 하룻밤 깜빡하면 금세 다 없어져요. 오죽하면 군대가 농장 밭을 지키겠어요? 겨울엔 먹을 게 없으면 남의 집 감자를 도둑질할 정도니까요.” 세 살배기 딸을 북한에 두고 온 탈북민, 80세 넘은 부모의 건강을 걱정하는 탈북민이 A씨에게 소식을 좀 알아봐 달라고 연락해왔다. A씨의 동생들은 송금 문제로 북한 보위부 조사를 받았고 소식이 끊겼다. 이마저도 브로커 같은 선이 없으면 정보를 듣지 못한다.
A씨가 말했다. “(돈을 전달하면서) 저는 단 1전도 뗀 게 없어요. 정부도 이날 이때까지 몇 년 동안 돈을 보냈지만 한 번도 잡은 적이 없어요. 정말 문제가 있으면 정부에서 그동안 왜 가만히 뒀겠어요? 먹고살라고 조금씩 보내주는 건데 그걸 문제 삼으면 어떡하나요. 탈북민들은 북한 가족이 어떻게 될까봐 여기서도 떠들지 못하고 조심히 사는데요.”
탈북민 부부인 주수연(45)·황지성씨(45)는 지난해 4월 경찰에게 갑작스러운 압수수색을 당했다. 경찰이 내민 압수수색 영장엔 주씨가 북한 가족 송금에 관여했다는 내용뿐 아니라 북한과의 연계 혐의도 적혀 있었다. 경찰은 영장에 “대금의 정확한 전달을 위해 북한 내 공범이 수수료 일부를 반국가단체 구성원에게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고, 외화벌이 사업이나 국내 탈북민 정보수집을 위해 반국가단체 구성원이 브로커로 활동하거나 공모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향후 불법과 탈법적인 자금 거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커 수사가 필요하다”고 썼다. 주씨는 지난 9월 약식기소돼 벌금형을 받았고, 조만간 정식재판을 청구할 예정이다.
지난 11월 2일 기자와 만난 주씨 부부는 윤석열 정부 경찰의 송금 수사에 강한 분노를 표했다. 그 배경엔 이들 부부가 중국, 북한의 브로커들과 교류하면서 북한 가족들의 생계 지원, 소식 전달을 넘어 탈북민들의 탈북을 돕는 역할을 해왔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주씨는 “갈 곳이 없을 때 나를 받아준 게 고마워서 이 땅에 해되는 짓을 안 하고 애국하며 살았다”며 “그런데 경찰이 증거도 없이 우리를 간첩으로 몬 것”이라고 했다.
황씨는 구출한 탈북민 중에는 인신매매로 팔려 갔던 여성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이다. “제가 데려온 (북한) 사람이 2000명이 넘어요. 작년에 입국한 탈북민의 절반은 우리 가족이 입국시켰어요. 중국에 팔려 가 있는 사람들을 돈 지불하고 구출했단 말이에요. 왜 우리 조선 여성들이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마음에 한 사람이라도 빼 오자고 시작한 일이었어요. 이런 아픔을 정부가 알고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엉뚱한 수사만 하는 거예요. 탈북민 정책이라는 게 밑바닥에서 고생하면서 비참한 삶을 겪은 사람들의 말을 들어서 만들어야죠. 정착금 올려주겠다고요? 아래는 탄압하면서 북한 인권을 이야기할 무슨 자격이 있나요? 내 부모한테 내가 돈을 보내는데 대통령이라도 보내지 말라고 할 자격이 있는 건가요?”
주씨 부부는 브로커들 사이에 오가는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해 한국 정보기관에 넘겨주는 일종의 ‘휴민트’(정보원) 역할도 수행했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 수사로 정보를 주고받던 선들이 끊어지고 있다고 했다.
황씨가 말했다. “북한의 물가 같은 것은 초보적인 정보예요. 탈북민들이 수집하는 거죠. 내가 거기 가서 장 볼 일이 있나요? 왜 알아보겠어요? 탈북민 송금이라는 게 부모·형제의 생계도 있지만 대북 휴민트로 정보기관이 많이 이용합니다. 총칼 없는 전쟁 시대에 이런 휴민트를 죽인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죠. 나라에 충성한 결과가 수사라니 정말 분하고 억울하고…. 경찰이 통장 내역을 다 파헤치고 15년간 구축한 인맥을 다 파괴해버렸어요. 토사구팽이잖아요. 결국 정권을 연장하는 구실이 필요한 거 아닌가 싶어요. 만약 우리가 간첩으로 밝혀졌다면 보수 정부 들어서 숨어있던 간첩을 잡았다고 자랑했을 거 아니냔 말이죠. 웃기는 일입니다.” 이들 부부는 과거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 네 명을 잡는 실마리를 제공해 정부로부터 포상금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탈북민들의 북한 가족 송금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통일부는 탈북민 지원과 북한 인권 증진을 연일 강조하면서도 경찰의 송금 수사는 방관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수사·재판에서) 인도적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외국환거래법은 합법적인 금융 거래가 제도화된 나라와의 관계를 상정한 것이고, 그게 안 되는 나라(북한)와 상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제도 개선은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지만 현행 제도하에서 유연하게 운용할 필요는 있다”고 했다.
북한 가족 송금을 처벌한 사례는 거의 없다. 그렇다 보니 판사마다 사건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탈북민 A씨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북부지법 판사는 현 경찰과 통일부의 자료, 과거 정부의 합법화 추진 등을 추가로 검토해보기로 했다. 반면 D씨 사건을 심리하는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판사는 “이게 대체 무슨 사건인데 변호인들이 많이 붙냐”, “최대한 조용히 처리해야 맞는 것 아니냐”며 심리를 서둘러 종결하자고 했다.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이탈주민 법률지원위원회가 공익소송으로 이 사건들을 수임해 무료 변론하고 있다.
탈북민들이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 가족에게 소액의 돈을 보낸 것이 외국환거래법상 ‘등록하지 않고 외국환 거래를 업으로 한 것’에 해당하는지, 북한에 돈을 보낸 행위가 외국환 거래인지가 재판 쟁점이다. 탈북민 측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를 근거로 외국환 거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A씨 사건의 경우 탈북민들이 A씨 계좌로 입금한 액수만 확인될 뿐, 실제 북한으로 넘어간 돈이 얼마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검찰은 재판에서 “금액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 외국환 거래를 업으로 한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앞서 경찰의 송금 수사는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넘겨받는 과정에서 실적 쌓기를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경찰청 안보수사국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외국환 업무를 업으로 등록하지 않고 수수료를 챙기는 것은 현행 실정법 위반이기 때문에 (기소된 탈북민들에 대한) 사법처리 절차는 그대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고소·고발이 있으면 수사가 이뤄지지만 인도적 목적 등을 고려해 단순히 돈을 보낸 사실만으로 인지수사를 하기보다는 안보에 직접 관련이 있는 중요사범 위주로 수사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