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에서 외손주를 돌보는 조 모씨(61세)는 요즘 병원을 자주 찾는다. 외손주를 안고 매일 어린이집을 오가느라 허리 통증을 달고 살기 때문이다. 조 씨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힘에 부친다며 딸에게 둘째는 봐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 씨 딸은 둘째 생각을 접었다.
저출생 대책으로 조부모 수당이 확산되고 있지만 도입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부모의 육아 동참이 출생률 반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환갑·칠순의 조부모들은 노후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더 이상 손주를 원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 입장에서도 부모님께 죄송하다며 아이를 그만 낳고 싶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7일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서울형 아이돌봄비 지원 사업 성과 분석 및 개선 방안 연구’에 따르면 사업 참여 가정의 육아 조력자 5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60.2%는 '양육자의 후속 출산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잘 모르겠다'는 20.3%였고 '원한다'는 19.5%에 그쳤다.
이번 연구에서 조력자 중 외조부모와 친조부모 비율은 각각 56.8%, 39.1%를 차지했다. 여성과 60대는 각각 90.8%, 70.5%를 차지했다. 종합하면 조력자 대다수는 60대 할머니라는 얘기다. 70대 이상도 13.3%나 됐다. 출산이 늦어지면서 황혼 육아 연령도 60·70대로 높아진 결과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부터 24개월 이상 36개월 이하 영아를 키우는 양육공백 가정(중위소득 150% 이하)을 대상으로 아이돌봄비를 지원하고 있다. 2011년 전국 최초로 조부모에게 손주 돌봄 수당을 지급한 광주시 정책에 더해 대상(조력자)을 조부모·외조부모·이모·삼촌 등 4촌 이내 친인척으로 확대했다. 민간 도우미보다 친정·시부모를 선호하는 맞벌이 육아 가정의 입장을 반영하고, 조부모는 용돈벌이를 할 수 있는 1석 2조 정책으로 주목받았다. 월 40시간 이상 손주·조카를 돌본 조력자에게 1인 기준 월 30만 원씩 최대 13개월간 지급된다.
하지만 조부모 육아 동참을 유도한 결과 뜻밖에 결과가 벌어졌다. 양육자가 자녀를 더 낳는다면 돌봐줄지 묻는 질문에 '무조건 도울 의향이 있다'고 답한 조력자는 28.1%에 그쳤다. '돌봄비 지원을 추가로 받는다면 의향이 있다'는 응답자가 38.2%였지만 '잘 모르겠다'와 '돌봐줄 의향이 없다'는 응답이 각각 21.3%와 12.4%를 기록했다.
양육 부모 입장에서도 효과는 기대 이하였다. 미안한 마음에 조부모에게 지급한 수고비는 아이돌봄비 수령 전후로 별 차이가 없었고, 육아휴직·근로시간·주택 문제 등 가장 큰 걸림돌은 여전했다. 그 결과 응답자 662명 가운데 ‘자녀를 더 낳을 계획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14.7%에 불과했다. 반면 ‘없다’와 ‘잘 모르겠다’는 각각 63.9%, 21.5%에 달했다.
조부모가 손주 출산을 바라지 않는 이유는 신체적 부담과 여가 위축 때문이다. 설문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몸이 고달픈지 묻는 질문에 41.0%가 ‘그렇다’고 답했다. ‘개인적인 일이나 시간을 가질 수 없다’고 답한 비율도 37.1%에 달했다.
월 30만 원이 적다는 지적도 나왔다. 민간 도우미 월급이나 육아시간동안 다른 일을 했을 때 벌 수 있는 돈과 비교하면 노동 강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설문에서 ‘아이를 돌봐주면서 오히려 비용을 더 많이 쓰게 된다’고 답한 비율이 34.9%로 나타났다.
서울시가 지원 대상 소득기준 폐지를 추진 중인 가운데 조부모의 육아 참여 확대가 출생률에 기여하는지 제대로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출생 극복의 핵심은 부모의 돌봄시간 확보라는 점, 고령자 건강 악화나 우울증에 따른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소득기준 폐지시 필요 예산은 연간 77억 4000만 원에서 111억 6000만 원(구비 50% 별도)으로 대폭 늘어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조부모 수당이 저출생 극복에 도움이 되겠느냐"며 "객관적 평가에서 정책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데도 수당을 계속 준다면 결국 선심성 현금 지원일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