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의 어린 나이에 중국의 위안소로 끌려가 3년 동안 참혹한 고초를 겪었던 이옥선 할머니(97)가 지난 11일 세상을 떠났다. 한평생 고통의 기억을 품고 살았지만, 끝내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는 듣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이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가운데 생존자는 단 6명만 남았다. 평균 연령은 95.6세에 달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하나둘 잊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일제강점기에 겪은 수치와 고통을 평생 가슴에 묻어둔 채 살아오던 위안부 피해자들은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용기 있는 첫 증언을 내놓으면서 치유할 기회를 얻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외면할 수 없는 역사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됐다. 위안부 문제는 단지 ‘과거의 상처’로 남겨둘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진실은 역사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의 태도다. 사죄는커녕 역사 왜곡과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다. 2015년 한·일 간 합의도 피해자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된 채 강행됐고, 일본은 이를 근거로 모든 것이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2014년 아사히신문이 1990년대 위안부 관련 보도에 대해 오보라고 밝힌 이후 일본 언론에서 위안부 보도는 자취를 감췄다. 위안부 문제의 강제성을 인정하면서 후속 조치로 교과서에 위안부를 기술토록 한 1993년 ‘고노담화’는 허울만 남았다. 심지어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은 피해자들을 두고 ‘자발적 매춘부’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는다. 피해자들의 존엄은 무너지고, 그간 쌓아온 진실규명 노력은 우익들의 반진실 공세에 파묻혔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달 출범하는 새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분명하다. 피해자들이 생존해 있는 지금이 문제 해결의 마지막 기회임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는 전시 성폭력에 대한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고, 외교 무대에서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알리는 활동을 지속해야 한다.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이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위안부 문제는 우리 모두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는 지체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