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모교 신부 "맥주 나누던 겸손한 '밥'…평화의 도구 될 것"

2025-05-11

교황은 로마에서 이곳까지 와서 나와 내 동기들의 서원을 한 뒤 함께 맥주와 피자를 먹으러 갔습니다. 제게는 교황이기에 앞서 ‘겸손한 밥(로버트)’으로 남아 있습니다.

10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 빌라노바대학 성당에서 미사를 준비하던 조셉 나로그 신부는 교황 레오 14세와의 기억을 묻자, 그의 이름 로버트 프리보스트의 애칭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로그 신부가 맡은 세인트 토마스 교구에 포함된 빌라노바대학은 교황 레오 14세의 모교다. 미국에서 두 곳뿐인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계열 대학 중 한 곳으로, 교황은 로마 가톨릭의 한 교단인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해 수도회 총장을 지냈다. 가톨릭 역사상 미국인은 물론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출신 교황이 탄생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미사 전 중앙일보와 대화를 나눈 나로그 신부는 “시간이 허락된다면 미사에 참석해 형제들을 직접 만나도 좋다”며 성당 문을 열어줬다. 그리고는 “오늘 교황의 이야기를 한국의 형제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손님이 오셨다”며 취재진을 신도들에게 직접 소개한 뒤 미사를 시작했다.

나로그 신부는 “여기 모인 아우구스티노 수도자들은 스스로 ‘성 어거스틴의 아들’이라고 밝힌 교황의 여정에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교황은 서원식은 물론 뒤풀이 파티에도 참석했던 겸손하고 사려 깊은 분으로, 교황이 돼 바티칸 발코니에 걸어 나왔을 때 우리 모두는 가족이 나오는 것 같이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교황 선출 직후 국무부에서 전화를 받았다”며 “그들은 교황 취임식에 보낼 미국 대표단이 준비할 선물로 무엇이 좋을지 내게 물어볼 정도로 우리는 교황을 아는 사람 중 한명에서 이제 교황을 매우 잘 아는 사람들이 됐다”고 했다.

성당에서 만난 신도 조지 웹스터도 “여기 모인 사람 중 상당수가 교황과 인연이 있을 정도로 교황은 미국에 올 때마다 빌라노바를 찾았다”며 기자를 다른 신도들에게 소개했다. 신도들은 제각각 교황과의 개인적인 인연을 언급하며 “레오 14세는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정신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교황 레오 14세는 이날 교황 선출 후 처음으로 모든 추기경들을 한자리에 모아 “나는 단시 겸손한 종”이라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소중한 유산을 이어받아 여정을 계속하자”고 당부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로마 시내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성모 대성전)에 안장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무덤에 헌화했다. 이에 앞서서는 비공식적으로 로마 외곽 제나차노에 있는 ‘착한 의견의 어머니’ 성지를 방문했다. 이곳은 1200년부터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가 관리해온 곳이다.

이날 빌라노바 미사에 참석한 마이클 휴고스 신부는 “성령께서 레오 14세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뜻을 이어 전세계의 평화를 가져오게 하기 위해 그를 교황으로 이끈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이미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한 교황은 한국과 한국인들을 위해서도 언제나 기도할 것”이라며 “평생 평화를 위해 기도해온 교황은 이제 스스로 평화의 도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레오 14세의 교황 선출이 확정됐던 지난 8일 빌라노바 대학 성당에선 하루 종일 축하의 종이 울려퍼졌다. 기자가 찾은 이날 교정은 교황 선출의 흥분보다는 레오 14세 선출 이후 맞는 첫 주말을 준비하느라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토요일 오후였음에도 빈 성당엔 학생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주일 미사 때 사용할 음악을 연습하고 있었다. 음악을 담당하는 테드 라템은 “빌라노바에서 교황이 나온 뒤 첫 미사이기 때문에 모두 긴장하면서도 큰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종교와 무관하게 레오 14세의 교황 선출을 반기며 새 교황이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를 기대했다. 졸업식 복장으로 기념 사진을 찍던 케이티 누난은 “나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8일 울려퍼진 종소리에 함께 기뻐했다”며 “교황은 가난한 사람과 약자들을 위해 언제나 기도할 거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손자의 졸업식에 참석했다는 샘 코리는 “피부색과 인종, 성별 등 모든 종류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신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일각에선 교황이 강경한 이민정책을 추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립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과거 그가 추기경 시절 이용한 X(옛 트위터) 계정엔 트럼프 정부의 이민 정책을 비판하는 기사를 공유한 흔적이 확인된다. 지난 2월에는 JD 밴스 부통령을 비판하는 기사를 공유했다. 기사의 제목은 “JD 밴스가 틀렸다. 예수는 타인에 대한 사랑에 등급을 매기라고 하지 않았다”였다.

이날 미사를 집전한 나로그 신부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구체적인 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교황은 온화하고 부드럽고 매우 신중한 사람”이라면서도 “필요한 때는 분명하게 단호한 입장을 취할 수 있는 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교황은 예수님이 우리 중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고 믿고 있다”며 “복잡한 현재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인물이 교황으로 선택된 거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빌라노바(펜실베이니아)=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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