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 사는 직장인 최모(43)씨는 넉 달 전 목 디스크 통증이 심해지면서 집 근처 정형외과 의원을 찾았다. 의사 권유에 일주일에 한 번씩 신경차단주사를 계속 맞고 있다. 주사를 맞을 때마다 도수·물리치료를 한 세트처럼 같이 받는다. 그렇게 25만원을 낸 뒤, 실손보험으로 비용을 청구한다.
너무 잦은 치료 주기에 의문이 생긴 최씨 질문에도 "상태가 심해서 자주 맞는 거니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의사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의사가 권유하니까 맞지만 효과는 잘 모르겠다. 시원한 건 잠깐인데, 수술받는 것보다 나을 거 같아 계속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건강보험 적용 대상인 신경차단술이 '과잉진료' 통로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신경차단술은 척추 환자 등에게 국소마취제·스테로이드 등을 주입하면서 통증 완화, 염증 개선을 꾀하는 치료법이다. 한 환자가 병·의원 수십곳을 도는 식의 남용 사례가 적지 않은데다 잦은 치료가 오히려 감염·염증 등 병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18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신경차단술(척수신경총·근·절) 통계 자료에 따르면 신경차단술 시술 건수는 2018년 851만건에서 지난해 2310만건으로 2.7배가 됐다. 건보 급여 비용도 같은 기간 3734억원에서 1조1481억원으로 3.1배 뛰었다. 건보 재정으로 부담하는 진료비가 연평균 25.2%씩 급증한 것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전체 건보 급여비가 연평균 8%가량 오르는 것과 비교하면 비정상적인 증가세"라고 말했다.
의료기관 종별로는 의원급이 91.5%(급여비 기준)를 차지했다. 시술 대부분이 큰 병원급이 아니라 마취통증의학과·정형외과 등의 개원가에서 이뤄진다는 의미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시술 시간이 10분 남짓으로 짧지만, 진료비가 5만~8만원씩 나오니 개원가에서 선호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이들 환자는 40세 이상 중·고령층에 집중됐다. 고령화 영향 속에 신경차단술 효능이 떨어지고, 척추 통증 등이 빨리 재발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의료적 필요성을 넘어서 '의료 쇼핑' 식의 과도한 시술이 이뤄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 신경차단술 청구 상위 10개 의원을 살펴보면 전체 건보 청구액의 50~80%가 신경차단술에 쏠렸다. 이들 기관을 찾은 환자의 절반 이상이 시술을 받았다. 또한 서울 A 의원은 환자당 평균 21.2건을 시술하면서 전체 평균(3.6건)의 6배에 달했다. 일부 환자는 시술을 수백번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 B씨는 지난해 병·의원 60곳을 돌면서 신경차단술 시술을 받았다. 이는 전체 환자 평균(1.2곳)의 50배에 달하는 수치다. B씨는 한 곳에서 한두 번씩 이용하는 식으로 장소를 계속 바꿨다. 지난해 신경차단술 시술로 병·의원을 6곳 이상 이용한 환자만 1400여명으로 집계됐다. 포털 사이트엔 신경차단술 장점만 내세운 개원가 광고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또한 신경차단술은 실손보험을 타고 비급여 주사제·치료재료를 끼워파는 혼합진료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받는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척추 시술 관련 실손 보험금이 빠르게 증가하는 데 신경차단술이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신경차단술은 횟수·간격 등 실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학계에서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단기간에 지나치게 많은 시술이 집중되면 척추 염증·감염이 악화하면서 오히려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수도권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최근 척추 수술을 받으러 온 환자 중에 골수염 등 염증·감염성 사례가 많이 늘었다. 정확한 원인은 분석해봐야겠지만 신경차단술 급증에 따라 척추 주변 조직이 약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경차단술은 통증 완화 등 일시적 효과는 있지만, 3개월 이상 과하게 의존하면 면역이 떨어지고 근본 치료가 더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남훈 건보공단 급여상임이사는 "장기간 치료에도 통증이 지속하면 다른 치료법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적정한 이용이 가능하도록 신경차단술 표준 진료지침 마련 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